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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만 없는 ‘꿈의 첨단도시’/미리 본 21세기 지하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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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만 없는 ‘꿈의 첨단도시’/미리 본 21세기 지하공간

입력
1997.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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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푸른하늘 어우러진 지상엔 주택과 녹지만 있다/대신 땅속 곳곳 건설된 도로·빌딩·문화공간들/집광장치로 자연의 빛이있고 거미줄처럼 연결된 교통망/‘거대도시’ 위용을 자랑한다2025년 5월28일 아침 8시 K씨(38)는 현관문을 나섰다. 신형 스마트카 「오리온」에 올라 통제스위치를 「자동」에 놓고 간단히 『회사』라고 밝히자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동 운전시스템과 카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완비한 전기자동차 「오리온」은 이내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아파트단지를 빠져 나갔다. K씨는 운전석을 뒤로 젖히고 눈을 반쯤 감았다. 무악재를 넘어 선 차는 독립공원 입구의 지하 승강탑에 들어섰다. 차가 승강기에 오르는 순간 K씨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승강기는 60m 깊이의 지하 15층에서 멈추었다.

여의도로 통하는 8번 지하간선도로에서 차는 다시 질주하기 시작했다. 여의도 공원 지하 승강탑에 도착해 지하 9층에서 회사 주차장으로 통하는 전용 지하도에 들어서 곧 주차장에 도착했다. 집에서 꼭 25분.

차를 타고 오는 동안 라디오 뉴스는 『서울의 지하공간 개발이 이제는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주요 지하도 교차지점 25곳에 설치된 대형 지하차도 분배 승강탑을 최소한 46곳으로 늘려야 하는데 마땅한 공간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지하차도와 주요 지하시설 등에서 화재가 발생하거나 지진 등으로 방벽이 무너져 지하수가 분출할 때에 대비한 자동차단장치 점검에서 12%의 불량 작동이 발생해 시민들이 걱정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었다.

잠시 우울한 기분으로 승강기에 올랐던 K씨는 지하 6층에서 내려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기분이 상쾌해 졌다. 지상의 집광 장치와 광섬유로 연결된 천정의 조명장치는 환한 자연광을 쏟아 냈다. 시원한 자연 바람도 간간히 흘러 들어왔다. 화분에는 영산홍이 붉게 피어 있었다.

K씨의 아내 N씨(36)는 9시께 둘째 딸(5)과 함께 또다른 스마트카 「페가소스」에 올랐다. 용산 가족공원에서 9시30분부터 열리는 유치원 소풍. 무악재를 넘으면서 N씨는 어린시절과는 너무도 달라진 서울의 모습이 새삼스러웠다. 거리에 화물차는 한대도 보이지 않았다. 남산을 가렸던 중심가의 고층건물들은 땅속으로 수십층을 파고 들어간 대신 땅위에는 5, 6층 높이만 남았다. 군데 군데 가늘게 뻗어 올라가 버섯처럼 퍼진 초고층 건물들이 서 있지만 눈앞으로 가득 다가서는 푸른 남산을 가릴 정도는 아니었다.

서울 뿐만 아니라 지방 대도시에서도 산자락과 역사적 유적을 가렸던 고층건물은 모두 지하층이 지상층보다 많게 설계돼 땅속으로 깊이 박혔다. 산자락과 어울린 문화유적의 아름다움이 살아 나 외국인 관광객도 늘어났다.

서울은 지하공간 개발에서도 이미 세계 정상 수준이었다. 경인 물류전용터널의 무인 전동시스템은 대형컨테이너를 인천항에서 서울의 지하 물류기지로 끊임없이 실어 나르고 쓰레기는 가연성·불연성 쓰레기로 나뉘어 좁은 지하수송터널을 통해 공기압축 방식으로 총알처럼 지하 열병합 발전소와 매립장으로 쏘아지고 있었다. 주민들의 반대로 한동안 건설이 지연돼 온 원자력 발전소는 무인도 지하에 속속 건설되고 지하 지열발전소도 곳곳에 건설돼 지하공간 개발에 따라 크게 늘어난 에너지 수요를 감당하고 있었다.

비용과 안전면에서 수십년전에 거론된 지하공간 개발 반대론이 꿈같다. 많은 돈이 들고 난공사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땅속이 활짝 열린 지금 지하의 업무·문화공간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상의 넓은 녹지를 어린이들의 놀이 공간과 노인들의 휴식공간으로 되찾은 것은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시민들의 행복이다.<황영식 기자>

◎지하개발 경제성 있나 없나/공사비 지상보다 30∼50% 더들어도 토지매입비 등 감안땐 장기적으로 되레 이익

대형 지하공간 개발에는 엄청난 돈이 들어 간다. 94년에 나온 서울 여의도 개발 계획은 추정 비용이 2조원에 달했다. 지상시설과 교통망 등의 재정비 부문을 제외하고 쇼핑센터와 스포츠·레저, 전시·문화시설 등 8만7,000평 규모의 지하광장을 개발하는 데만 1조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추정됐다.

한때 삼성 등 국내업체들이 서울역과 시청사이에 건설키로 하고 추진했던 8만4,000평 규모의 서울 지하복합도시(Geoness City)계획은 총사업비가 4조 4,000억원에 달했고 대전시가 추진했던 둔산동 지역 6만평 규모의 지하도시 건설 계획에는 1조원의 예산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용두산 지하개발 계획의 경우 예상 총공사비가 680억 규모였다.

지하공간 개발에 이렇게 막대한 돈이 들어 가는데도 경제성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기본 법제 정비와 정부의 지원만 있다면 사업성이 충분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하공사에 소요되는 추가 비용보다 지상과 지하공간을 동시에 활용할 때의 이점이 더 크다는 것.

일반적으로 지하공간 개발에는 지상공사보다 30∼50%의 비용이 더 든다. 롯데건설 토목부 이명철 차장은 『지하공사의 경우 공법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굴착비용과 잔토 처리비용, 구조물 설치 비용 등을 합쳐 평당 400만∼500만원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지상구조물 공사비용이 300만원 전후인 것에 비하면 평당 100만∼200만원 정도 비용이 더 드는 셈이다.

지하 저장고 등 무인 지하시설을 시공한 선경건설에 따르면 지하공간 1㎥당 굴착 및 구조 보강비용은 7만∼15만원 정도. 잔토 및 지하수 처리 비용, 공사지원 및 환경시설 비용까지 합치면 평당 약 400만원이 든다. 지상 저장시설의 평당 비용이 250만∼300만원인데 비하면 25∼60%가 더 들지만 암반이나 지질조건이 좋을 경우 굴착 및 보강설비 비용이 절약돼 지상과 비슷한 비용으로도 공사가 가능하다. 현재 공사중인 곤지암 지하 저장터널의 경우 총공사비가 60억원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토지 매입비용과 지하공간의 높은 에너지 효율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수익성이 높다고 공사 관계자들은 말했다.

선경건설 지하비축팀 김호영 부장은 『지하개발비용은 일반공사보다 50% 가까이 더 들지만 토지 매입비가 줄어 들고 지상공간도 활용할 수 있어 결코 수익성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일본의 경우 토지 평당 가격이 250만엔(1,900만원) 이상일 때는 지하공간 개발이 경제적인 면에서 훨씬 유리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고 말했다.<배성규 기자>

◎지하건축전문 삼우설계 김창수 소장/지하개발에 뒤지면 후진국도시로 남습니다/기술수준만은 세계일류 자부

『근시안적인 정부 정책이 지하공간의 적절한 개발을 막고 있습니다』

지하건축 전문 설계회사인 삼우설계 김창수 대표소장(52)은 우리나라는 인구가 많고 국토가 좁아 지하 공간 개발이 불가피하다며 이같이 진단했다.

그는 『우리의 지하공간 개발 기술은 사우디아라비아 국제공항 건설공사를 통해 세계적 수준임을 인정받았다』며 『지하공간 개발과 관련한 전문부서도 없는 현실이 기술개발마저 저해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한때 건교부와 서울시에서 지하공간 관련 입법을 추진하고 여러곳의 개발 계획을 세우는 등 지하공간 활용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인 때가 있었지요. 그러나 책임자가 바뀌자 흐지부지돼 버렸습니다. 책임자가 임기내에 치적을 남기려는 욕심에서 개발 기간이 긴 지하공간 개발을 외면하는 것인지…』

김소장은 지상·지하 복합개발 방식으로 추진되던 서울 여의도 개발계획이 두번이나 무산된 것에 가장 큰 아쉬움을 표했다. 88년 여의도 증권가에 건물을 세우면서 건축주들을 불러 지하를 공동으로 개발하자는 의견을 모았다. 빌딩이 10여개가 들어가는 부지에 단일 지하상가가 개발되면 각종 편의시설 외에 시민들의 휴식터가 마련돼 서울 최고의 지하명물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건축주들을 설득했다. 기초공사까지 공동으로 진행했으나 결국 이권 싸움이 벌어져 완전히 무산됐다. 또 94년 여의도 광장 지상에는 공원, 지하에는 동서를 잇는 대규모 시설을 조성하자는 계획이 섰지만 시장이 바뀌면서 지하 개발계획만 백지화했다.

『여의도에 지상공원이 들어 서고 오래 지나지 않아 지하 개발을 위해 다시 지상 구조물을 철거해야 할 겁니다. 왜 엄청난 예산을 낭비하려는지 안타깝습니다. 부담은 결국 시민에게 전가되는 것인데요』

정부측은 이에대해 비용 부담과 기술공법상의 문제 외에 지하공간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부정적이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를 대고 있다. 하지만 김소장은 손을 가로저으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지하상가 및 지하도로의 조도를 두배 이상 높이면 저절로 깨끗해 집니다. 지상처럼 밝은 거리라면 관리인이나 점포 주인들이 지저분한 거리를 그냥 놔 두겠습니까. 그럼 지하공간에 대한 시민들의 부정적인 인식도 자연히 바뀔 것입니다』

그는 조만간 지하공간 개발 요구가 잇따를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개발 의지를 촉구했다. 『테헤란로나 명동, 여의도 등의 빌딩 지하가 모두 연결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시민들이 기후에 관계없이 지하의 문화전시장을 관람하고 공원을 산책하며 목적지까지 이동하게 됩니다. 먼 장래의 일이 아닙니다. 지하개발에서 뒤지면 대도시는 후진국 도시로 남을 겁니다』<염영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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