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파리에서 조인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러시아간 「상호관계, 협력 및 안보에 관한 기본협정」은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의 표현대로 「유럽 평화건설의 새시대를 개막한」 역사적 사건이다.협정의 내용을 보면 나토의 동유럽 확대를 러시아가 양보하는 대신 러시아―나토합동위원회를 설치해서 유럽안보에 관한 사항을 긴밀히 협의하도록 돼 있다. 나토 신규가입국가로부터 핵무기를 배제하고 재래식 전력을 증강하지 않을 것도 약속하고 있다.
서방측은 이 두가지 안전판을 보장함으로써 러시아를 「유럽의 일원」으로 끌어들인 셈이지만, 협정 자체가 강제성을 갖추지 않은 정치적 선언이어서 정착되기까지는 앞으로 양측간에 적지않은 논란과 조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동유럽에 나토에 의한 평화를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또한 러시아가 느슨하게나마 유럽 집단안보체제에 편입됐다는 점에서 이번 협정 조인은 획기적인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협정은 미국과 러시아, 또는 서구와 동구간의 세력개편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유럽국가의 나토가입은 사실 처음부터 미국이나 러시아가 원하던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동유럽국가들의 간절한 소망에 의해 성취된 것이다. 소련이 붕괴하고, 바르샤바조약기구마저 해체된 후 동유럽에는 누구도 평화를 보장할 수 없는 극히 위험한 안보 공백상태가 형성됐다.
그 위험이 현실화한 사태가 바로 인종말살의 극한상황까지 연출된 보스니아전쟁이다. 나토의 개입으로 유혈사태는 일단 진정되고 선거도 실시됐지만, 언제 다시 불이 붙을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협정 조인에 따라 오는 7월1일 체코와 헝가리 폴란드가 1차로 나토에 가입하게 되지만, 발칸국가들은 물론 발트 3국 등 러시아 접경국가도 줄지어 가입을 기다리고 있다.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침략을 잊지 못하는 러시아는 접경국가의 가입만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는 자세다.
그러나 나토의 확대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러시아에도 바람직한 일이 될 수 있다. 하벨 체코 대통령은 러시아를 포함한 관련국 모두가 하나의 안보체제 안에서 유럽공동의 문제를 함께 평화적으로 풀어 나갈 것을 제안하고 있다. 과거의 동서 대립개념에서 벗어나 민족분쟁과 테러 마약 등 국제범죄에 공동대처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나토―러시아간 기본협정 조인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이 하벨의 통찰에 있는지 모른다. 러시아가 유럽에서 뿐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나 한반도 문제에도 이같은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다면 동북아 안보상황에 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주변에 이처럼 평화 의지를 가진 러시아가 들어올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일은 우리나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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