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가 개방시장체제 아래의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자면 현행 재벌그룹 경영체제의 혁명적인 체질개선이 요구된다. 지금 우리 경제는 한보사태와 불황이 겹쳐지고 있는 경제·정치 등 복합적인 난국에 당면하여 재계의 재편성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이 재편성은 과거와 같이 재벌그룹 사이의 위상 변화가 아니라 재벌 그룹들의 경영혁신으로 이어져야 한다.한보철강의 부도사태 이후 사실상 부도가 발생, 다른 기업에 흡수·통합됐거나 부도방지협약의 대상기업으로 지정된 삼미·진로·대농과 부도처리된 삼립식품 등의 경영실패는 공통된 요인을 갖고 있다. 과도한 채무, 무리한 사업다변화와 확장, 과당경쟁, 오너의 경영전횡 등이다. 이러한 실패요인들은 단지 부도재벌그룹들의 전매특허가 아니라 정도의 차가 있을 뿐 우리나라 재벌그룹 전체의 공통된 특성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제2금융권에서는 부도방지협약의 수혜자격 51대 재벌그룹 가운데 약 3분의 1이 그 대상그룹으로 지정될지 모른다는 루머가 떠돌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종합금융·리스사·할부금융사 등 제2금융과 심지어 사채업자들도 신용이 공인되지 않은 그룹들에 대해서는 어음할인이나 대출을 기피, 금융의 양극화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한다. 신용공황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금융권·재계 및 산업계 등은 신용공황이 경제공황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겠다. 현 경제난국의 돌파에는 연착륙이 요구되는 것이다.
정부가 그 대책에 앞장서야 한다. 부도방지협약, 성업공사의 확대개편 등 일련의 도산그룹 구제대책을 수정, 보완하여 실효성을 확립해야 한다. 제1·2금융권도 기피하고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대안을 내놓든가 협력해야 할 것이다. 빚을 떼이는 것보다는 기업을 살려 원금이라도 받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재벌그룹 자체의 미래에 대비한 경영혁신이다. 정부, 학계에서 수없이 지적해 온게 빚 경영의 청산과 경제력 집중도의 완화다. 재벌그룹들은 하나 같이 빚이 많다. 평균 타인자본비율이 350%다. 일본(200%)보다 높고 대만(75%)과는 비교가 안된다. 미국보다 훨씬 높다. 금융비용부담이 큰 것은 바로 이 빚 경영의 고질 때문이다. 너도나도 차입금으로 땅사고 공장짓고 하니 빚의 규모도 커지고 금리도 올라 금융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이제는 개방으로 국제경쟁이 치열, 빚얻어 경영해도 남는 노다지를 찾기가 어렵게 됐다. 96년말 현재 51대 그룹 가운데 9개 그룹이 차입금이 매출액보다 더 많고 10개 그룹은 금융비용이 매출액의 10%를 상회했다. 경쟁력이 있을 리가 없다.
또 하나는 해를 거듭할수록 심화되는 기업집중도 문제이다. 선단식 경영형태는 구시대의 유물이다. 하루 빨리 정리해야 한다. 오너의 전횡 경영체제도 전문 경영인체제로 전환돼야 한다. 재벌그룹들은 경쟁력향상이 우선 바로 자기자신들의 개혁에 있음을 알아야 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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