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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영 단편 ‘냉장고’(황종연의 소설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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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영 단편 ‘냉장고’(황종연의 소설읽기)

입력
1997.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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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문화의 유혹과 공포/발랄하고 야무지게 표현사람의 감각중에서 미각처럼 사회적인 것도 없다.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은 인류 그 자체만큼이나 역사가 오래된 사회적 접촉과 유대의 방식이다. 가장 친밀한 인간관계인 가족을 식구라 하고, 『한솥밥을 먹는다』는 사실을 집단 통합의 요구로 여기는 것이 인간 문화의 이치다. 그러나 음식의 친교적, 통합적 기능은 소비사회에서도 건재한가? 상품화한 음식의 소비는 오히려 사회적 차별화를 부추기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김현영의 단편 「냉장고」(「현대문학」 5월호)가 유발하는 물음중의 하나이다.

「냉장고」의 작중 화자는 음식과 관련하여 대조적인 두 인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하나는 아침 식탁에서 바게트빵을, 그것도 껍데기만 조금 카페오레와 같이 먹는 그의 계모, 그녀는 감각적으로 세련된 삶의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다른 하나는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고생한 끝에 초라한 아낙네가 되어버린 그의 생모. 남편이 사업에 성공한 이후 촌스럽다고 멸시 당한 그녀는 대식증에 걸렸고, 결국 고구마를 삼키다가 급체에 걸려 죽었다. 작중 화자는 계모와 생모, 바게트와 고구마, 우아한 향락과 순박한 윤리의 경계에 자리잡고 있다. 그는 아침 식탁에서 계모에게 욕망의 눈길을 던지는 동시에 생모의 식단에 속하는 꽁치구이를 일부러 먹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계모가 예시하는 것은 상품소비가 사회적 특권의 표현으로 통하는 소비사회의 현실이다. 그녀의 매력은 호사스런 소비가 가능케 하는 차별화한 삶의 강력한 유혹을 상징한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작중 화자는 계모에 대한 은밀한 집착에서 벗어난다. 그에게 생모를 연상시킨 흐린 하늘이 다시 애를 낳는 산모로 상상되는 심리적 추이는, 그가 계모와 닮은 여자 친구와의 결합에 실패한 사건과 더불어, 작품의 주제에 중요한 복선을 이루고 있다. 온갖 서양음식들로 가득 찬 냉장고를 비우고 그속에 들어가 태아의 몸짓을 하는 그의 퇴행적 행동은 그것과의 연관 아래 생모의 인륜적 감각으로의 귀환이라는 함의를 가지게 된다.

「냉장고」는 소비문화에 유혹과 저항을 아울러 느끼는 복합적 심리를 발랄하고도 야무지게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동원된 화법은 반어와 재치가 풍부하고, 극적으로 과장된 행동 제시를 즐기며, 전체적으로 에둘러 말하기의 형식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젊은 세대의 문화적 경험에 상응하는 새로운 소설 공법이 무엇인가를 가늠하게 해 준다. 김현영은 73년생의 신인이다. 앞으로 나올 그의 작품에 기대가 크다.<문학평론가·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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