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썼다” 수준서 양해 구할듯/청와대 일각도 정국반전 의문김영삼 대통령이 마침내 국민 앞에 직접 나서 대선자금에 관한 입장을 밝힌다. 형식은 대국민담화이다. 지난 2월25일 한보사태와 관련한 대국민사과담화를 발표한 지 2개월여만이다.
김대통령이 대국민담화라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대선자금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게 된 것은 역시 국민여론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김대통령은 형식과 내용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나 지시를 안했을 뿐이지 그동안 참모진은 물론 외부인사들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면서 모든 가능성을 다 검토해 왔다』고 말했다. 적절한 시점을 택하기 위해 고심해 왔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여러가지 정황을 살펴보면 이회창 신한국당대표를 통한 간접해명 이후의 사태전개가 김대통령의 결단을 재촉한 것으로 보인다. 김대통령은 간접해명으로 인해 문제를 남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주었으며, 경선지원 밀약을 했다는 의혹을 당내에 불러 일으켰다.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당정회의 등에서 언급이 있을 것이라던 예상을 깨고 이마저 피하려다 오히려 한발 더 밀려나간 형국이 됐다. 김대통령은 짧은 기간에 두번씩이나 국민 앞에 서서 담화를 발표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부담감을 느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국민담화는 벼랑 끝 선택인 셈이다.
한보사태로 빚어진 대선자금 시비는 내용보다는 형식을 둘러싼 논란이 더 거셌다. 형식은 이제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수준으로 일단락됐지만 내용은 크게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청와대 안팎의 관측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형식의 변화는 대통령의 결심으로 가능했지만 내용이야 이대표가 해명한 지 며칠 사이에 어떻게 새로운 것을 밝힐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담화에서 대선자금 부분 언급 수위가 기대에 못미칠 것임을 솔직히 시인했다. 이번 담화를 딱히 「대선자금문제」에 관한 것으로 못박지 않고 시국전반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담화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담화에서 「법정한도액 이상 사용」이란 표현은 피한 채 많은 액수의 선거자금을 사용했음을 인정한 뒤 진솔하게 국민의 양해를 구하는 선에서 대선자금 문제를 매듭지을 것으로 보인다. 김대통령은 과거 극복이 미래 창조라는 차원에서 돈 안 쓰는 선거를 위한 정치풍토와 정치구조 개혁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기회에 차남 현철씨 문제도 다시 한번 언급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국민들의 요구에 따라 김대통령이 직접 해명에 나서지만 과연 이것으로 정국상황이 반전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가지고 있다. 대통령 담화가, 무엇보다 대선전략 차원에서 공세를 펼치고 있는 야권에 또 다른 빌미를 제공하는 결과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대선자금은 여당의 문제가 아니라 여야 공동의 문제』라며 『이 시점에서 어떤 해명도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의 담화발표 결정이 이대표의 경선 입지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누구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는지 양측 주장이 엇갈리고 있으나 지난 23일 이대표의 간접해명이 김대통령과 이대표의 「정치동맹」 가능성을 높여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담화발표 결정으로 이대표는 괜히 나서 물의만 일으켰다는 비판을 듣게 됐다. 이대표로서도 대응방안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28일 주례보고때 있을 김대통령과 이대표 사이의 입장조율이 주목된다.<손태규 기자>손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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