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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자율’ 내세워 ‘직무유기’/‘무정부상태’ 금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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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자율’ 내세워 ‘직무유기’/‘무정부상태’ 금융시장

입력
1997.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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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역할 못하고 악성관행조차 방치/부도방지협약 등 ‘심판’역할 되찾아야금융시장의 무정부상태가 장기화하면서 금융당국의 「직무유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자율금융」인양 팔짱만 끼고 있는 당국의 무대응이 되레 혼란을 확대재생산한다는 비판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27일 금융계에 따르면 무수한 기업들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현 금융시장을 조기 정상화하려면 자율시장의 「경기규칙」을 만들고 경기참여자들의 규칙준수 여부를 감시·제재하는 「심판」의 역할을 당국 스스로 하루 빨리 회복해야 한다는게 금융권의 공통된 지적이다.

부도방지협약후 한달여 동안 금융위기에 대해 당국이 취한 조치는 23일 강경식 부총리가 밝힌 「기업대출 중단시 특검」방침이 전부. 그러나 「공권력투입」은 위협이지 정책은 아니다. 장고끝에 나온 대책이 이 정도라면 당국의 정책적 사고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금융시장이 아노미(혼란)에 빠진 것처럼 정부도 「아노미증후군」을 겪고 있다. 관치금융적 사고에 길들여진 탓에 자치금융시대의 역할을 찾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보사태이후 관치금융의 책임자 문책론이 제기되면서 재경원과 은행감독원내에는 『나서다가 책임을 지느니 욕을 먹어도 움직이지 않는게 낫다』는 보신주의마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하지만 관치금융의 배제, 자율금융의 정착이 「무정부」는 아니다. 과거처럼 특정기업의 생사에 대한 「결정자」역할은 없어져야하나 금융기관이 스스로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틀을 만들고 감시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선수 겸 심판」이던 정부당국은 더이상 선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심판역까지 포기하고 있다. 부실기업 마타도어의 난무, 금융권의 무차별적 여신회수, 잘못된 기업신용평가, 금융권간 정보불균형 등 정상적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악성관행까지 자율금융시대란 이유로 방치하고 있다.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장은 『비상시에도 가격원리에만 맡기는게 시장경제는 아니다』며 『당국은 시장경제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점에서 폐지여론에 직면해 있는 부도방지협약은 오히려 존속, 발전될 필요가 있다. 김진표 재경원 은행보험심의관은 『만약 협약이 생기지 않아 진로그룹과 대농그룹이 완전 도산했다면 경제는 과연 어떻게 됐겠는가. 소문만으로도 더많은 기업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 협약의 부도방지효과와 유발효과를 비교하면 그 존속필요성은 쉽게 입증된다』고 말했다. 한양대 강병호 교수도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환상에선 벗어나야 한다. 부분적 보완필요성은 있지만 협약은 시장실패를 방지하기 위한 당연하고도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금융이 몰락위기에 처해있는데도 금융개혁을 「밥그릇」싸움으로 비하시키고 인사 등에선 아직도 구태를 못버리는 등 금융당국은 해야할 일은 안하고 하지말아야 할 일만 골라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부의 「면피」를 위한 명목적 자율은 혼란만 부채질한다.<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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