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주차장 등 양적인 팽창에도 불구 단순 저심도개발 위주/주변 지하와의 연결 쾌적함·미적요소 고려/재산권 법안 마련 등 질적인 보완이 필요국내 지하공간 이용은 소규모 지하상가와 지하철, 주차장 등에 한정돼 있다. 대규모 상업시설과 초현대식 경기장, 문화센터나 휴식공간 등 다양한 시민 편의시설을 두고 활용하는 선진국과는 아직 차이가 크다.
국내 지하공간 개발의 효시는 67년 12월 서울 시청앞에 조성된 새서울 지하상가. 이후 70년대 대도시를 중심으로 지하상가가 속속 개발되고 1, 2기 서울 지하철과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인 지하유류 비축시설 등 대형사업이 이어졌다.
국내의 대표적인 지하공간 개발 사례는 지하철과 지하상가. 서울시 3기 지하철 공사가 끝나는 2001년이면 서울에만 총연장 398㎞의 지하철망이 구축된다. 부산 대구 인천 대전 광주 등 대도시도 20∼101㎞ 구간의 지하철망 건설계획을 갖고 있다. 지하상가는 96년말 현재 서울 30곳, 총면적 15만7,000여㎡를 비롯해 전국 59개소, 33만3,000여㎡에 이르고 있다. 지하상가 개발도 지하철 공사와 병행된 것들이 많았다. 삼우설계 이강주 연구실장은 『네트워크 개념의 지하철 개발은 지하공간 확대의 기폭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대형 건물의 지하공간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상가나 주차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하 6층 아래까지 개발되는 경우도 있으나 아직은 저심도 개발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들어 선 「나산스위트」가 지하 9층까지 공간을 활용한 것이 국내에서는 가장 깊다. 이 건물은 지하 1, 2층을 식당가로, 3층부터 9층까지를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90년 신축된 강남구 대치동 샹젤리제센터 B동 건물은 지상 5층, 지하 8층으로 지하공간이 오히려 규모가 크다. 이밖에 청평 삼랑진 무주 등에 지하 양수발전소가 개발돼 운용중이다.
이같은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국내 지하공간은 질적인 면에서 많은 보완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울대 건축학과 심우갑 교수는 『상업건물의 지하공간은 물론 지하상가나 역세권도 주변 공간과의 연결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개발돼 왔다』며 『공기정화와 냉난방 등 기술적인 문제뿐 아니라 색채 조명 등 디자인 개념까지 고려한 공간 개발이 아쉽다』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경제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지하공간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형편이다. 나산건설 관계자는 『우선 분양이 쉽지 않아 이용자의 편익을 제공한다는 상징적 효과를 고려하지 않으면 대규모 지하공간 개발이 어렵다』며 『요즘 분양되는 건물은 오히려 법정 주차대수만 겨우 맞추려고 지하 3층까지만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지하공간협회 김동관 차장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지하공간에 대한 단일법안이 없어 지하 재산권 문제가 복잡하고 지하공간 개발에 대한 노하우도 아직 부족하다』면서 『내년 건설시장 개방후 외국 건설업체가 지하공간 개발 공사부터 잠식할 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국토개발연구원 염형민 박사는 『환경과 경제성 등 지하공간의 한계로 지적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와 대기업이 지하공간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한번도 시도하지 않아 국민들이 늘 어두컴컴하고 숨쉬기도 겁나는 공간만을 연상하게 됐고 이같은 부정적 인식이 다시 정책 결정과정에 부담으로 되돌아 왔다는 것. 그는 『지하철공사 등을 통해 축적된 국내 기술을 총동원해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지하공간을 개발, 하나의 모델을 제공하는 것이 악순환을 깨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이상연 기자>이상연>
◎“땅속 지도가 없다”/도시가스관·상하수도관 등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몰라/개발 어려움은 물론 사고위험/지리정보시스템 구축 시급
지하공간 개발을 준비하고 있는 건설업체들이 안고 있는 가장 큰 현안은 땅속 곳곳에 숨겨진 「폭탄」을 찾는 일이다.
95년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참사를 비롯, 지하공간 개발과 관련한 안전사고는 모두 지하 매설물에 대한 기본 정보 부족이 원인이 됐다. 특히 대부분 지하 5m이내에 있는 도시가스관 상하수도관 전기·전화설비 등 지하 매설물은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
지하공사의 시공 주체가 각각이고 대부분 하청으로 이뤄져 담당기관도 『수리를 하려면 일단 이곳 저곳을 파 봐야 우리 것을 찾을 수 있다』고 토로하는 실정이다.
땅속 정보가 없어 일선 건설업체들이 겪는 어려움은 셀 수 없을 정도다. 벽산건설 관계자는 『일단 지하기반 작업이 시작된 후 땅을 파 보면 기존 정보와 전혀 다른 시설이 발견돼 설계를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도면에 나타나 있지 않은 가스관 등 위험시설이 수시로 발견돼 인부들도 불안해 하고 작업 기간도 지연된다』고 말했다. 기존 지하지도에 나와 있는 대로 지하 굴착 작업을 해도 이웃 건물의 재산권을 침범하는 수가 있어 공사후 막대한 보상을 해야 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특히 도시가스관은 체계적인 매설이 이뤄지지 않아 지하공간 개발의 최대 장애물로 꼽힌다. 녹색에너지원으로 불리는 도시가스는 현재 400만가구 가까이가 사용하고 있고 2000년까지 630만 가구에 보급될 예정이어서 대책이 시급한 형편이다. 상하수도망이나 전기설비 등도 파손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스관 파손처럼 대형사고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전문가들과 건설업계는 지하 매설물을 총괄하는 지리정보시스템(GIS) 구축을 가장 확실한 해결책으로 들었다. 하지만 현재 정책적 지원이나 투자 의지, 기술력 등이 부실해 제 궤도에 오르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지리정보산업 관련 중소기업 모임인 한국지리정보산업협동조합 남홍진 관리부장은 『정부나 기업 사이에 지리정보산업에 대한 개념이 아직 모호해 전산망이나 데이터베이스 산업과 혼동하는 예가 잦다』면서 『땅속의 지리정보가 얼마나 필요한가 하는 필요성을 홍보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설명했다.<이상연 기자>이상연>
◎단체장이 바뀌어서 돈·기술이 달려서…/지하개발 잇단 ‘좌초’/여의도 지하개발사업·서울시 지하고속도로·부산 용두산공원 개발/‘무정책의 정책’ 비판
국내 지하공간 개발이 최근 갑자기 주춤거리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미래형 사업」으로 내놓은 지하공간 개발 계획은 단체장 교체와 재원조달 및 기술력 부족 등을 이유로 유보, 또는 백지화 하기 일쑤다.
시장교체로 인한 계획변경의 대표적인 예는 서울 여의도 개발사업. 서울시는 94년 여의도광장에 공원과 대형빌딩을 조성하고 지하에는 문화공간과 쇼핑센터 대형주차장을 건설한다는 「여의도 개발계획」을 내놓았으나 95년 조순 시장 취임후 지하개발 계획은 유보됐다.
개발계획 자체가 즉흥적 발상에서 이뤄져 반짝 선전만 하고 끝나는 경우도 있다. 서울시 지하고속도로 건설계획이 가장 전형적인 예. 91년 이해원 시장은 서울시에 총연장 160㎞의 우물정자형 지하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거창한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은 것이어서 전문가들로부터 『현실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고 결국 이시장이 퇴임한 후 계획은 전면 취소되고 말았다.
서울시가 93년 발표한 시청앞 광장과 서울역 영등포 강남 청량리 등 21개 지역의 지하공간 개발계획도 발표이후 제대로 연구·검토가 되지 않아 사실상 폐기 상태다. 부산시 도시개발공사는 93년 부산 문현동에 3만4,000평 규모의 「부산종합금융단지 및 지하도시」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 이후 아무런 구체적 계획도 세워지지 않은 채 끝났다.
지하개발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인식부족도 문제로 지적된다. 부산 용두산공원 지하개발 사업은 부산시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데다 요구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사업자체가 유보됐다. 서울시 도시계획국 관계자는 『지하개발에 대한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현재 뚜렷한 청사진은 없다』고 시인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지자체가 지하도로와 지하상가 등 도시공간 개발계획을 잇따라 발표했지만 하나도 제대로 추진된 것이 없었다』며 『정부의 지하개발정책이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갈팡질팡해서야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한 지하공간 개발이 가능하겠느냐』고 지적했다.<배성규 기자>배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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