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에 목숨 걸지 않고 글쓰기에 목숨 걸었다”말총머리에 개량 한복을 입고 나무에 기대 선 이 청년. 시공을 거슬러 나타난 조선시대 떠꺼머리 총각 같기도 한데, 제3회 현대시동인상을 수상한 시인 이대흠(29)씨다.
「조용한 오후다/ 무슨 큰 일이 닥칠 것 같다/ 나무의 가지들 세상 곳곳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숨 쉬지 말라/ 그대 언 영혼을 향해/ 언제 방아쇠가 당겨질 지 알 수 없다/ 마침내 곳곳에서 탕, 탕, 탕, 탕/ 세상을 향해 쏘아대는 저 꽃들/ 피할 새도 없이/ 하늘과 땅에 저 꽃들/ 전쟁은 시작되었다/ 전쟁이다」(「봄은」 전문)
그의 시는 이처럼 긴장돼 있다. 특이한 외모 만큼이나 남성적인 역동성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현대시동인상은 문학상 중에서도 특이한 성격의 상이다. 62∼71년 동인지 26집을 낸 현대시 동인들이 등단 5년 이내의 신진을 대상으로 해 「선배 시인들이 후배 시인에게 주는 상」이자 「동인이 젊은 시인에게 주는 상」. 이번 심사를 맡은 김종해 시인은 『이대흠의 시는 강장한 남성적 서정성이 돋보이고 강렬한 메시지를 서정성 속에 녹여내는 솜씨도 뛰어나다』고 평했다.
이씨는 최근 첫 시집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창작과비평사간)를 냈다. 그는 『시집을 내고 몇달을 헛돌았다. 헛돈 김에 아주 헛돌자고 한달 넘게 여행을 다녔다. 돌아오니 아내가 결혼 앨범을 집어던지며 다 필요없다, 당신이 가장으로서 한 일이 뭐 있냐고 그러더라』며 허허 웃었다. 말인즉슨 『나이 서른에 나는 당대를 책임 못지겠다. 나는 시대에 목숨 걸지 않고, 살이에 목숨 걸지 않고, 글쓰기에 목숨 걸었다』는 것이다. 「나는 몇 번이고 헛딛는다/…/ 오래 걷다 보면 모든 것이 등불이 된다/ 저렇게 내 앞을 비추는 것들/ 길을 걸으며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짓밟고 간다」(「밤길」에서).<하종오 기자>하종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