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도 해결논의없이 정쟁만…지금 여권은 붕괴의 위기감에 시달리고 있다. 청와대가 김영삼 대통령의 「대선자금문제 입장표명 방식」을 놓고 계속 갈팡질팡해 온 것이야말로 국정의 공동화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여권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지적한다. 이들은 냉정하게 말하면, 갈수록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한다. 한보사태가 김현철씨 비리의혹으로 번지고 급기야 뇌관인 대선자금 문제가 터질 때까지 여권에서는 그동안 『어떻게 되겠지』라는 자조섞인 체념만이 휩쓸고 있었다는 자조의 목소리도 들린다.
무엇보다 김대통령이 흔들리고 있다. 대선자금 해명 방식만 해도 대국민담화―고위당정회의 언급―입장표명 거부―대국민담화로 오락가락했다. 현철씨 비리가 드러나면서 정국 장악력을 거의 상실한 김대통령이 대선자금 문제에 대해 갈피를 못잡고 번복을 거듭하는 모습에서 국정표류 현상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권력의 축을 이루고 있는 청와대, 당, 정부 모두 『누군가 알아서 하겠지』라며 서로에게 책임을 미뤄 왔다. 특히 대통령을 위해 온 몸을 던져야 하는 청와대 참모들조차 김대통령의 「의중」만 살피며 주저하는 분위기가 엿보였다는 것이 여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당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이회창 대표는 당내 의견수렴 과정도 생략한채 대선자금 공개불가를 천명, 「원맨쇼」 「김심 구애」 등의 비판을 자초했다. 다른 대선주자들은 때를 만난듯 이대표 경질론을 제기하고 있다.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문책하는 사람만 난무하는 극도의 분열상이 노정되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장을 지낸 한 원로의원은 『여권 저 깊숙한 곳에서 붕괴의 굉음이 들리는 듯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김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해도 국민이 납득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텐가』라며 『청와대, 당, 정부가 어떻게 후속대책을 내놓을지를 당연히 검토해야 하나 그런 징후가 없다』고 개탄했다. 일각에서는 『미봉책으로 국면전환이 어렵다면 아예 승부수를 띄울 생각을 해야 한다. 시기를 놓치면 후일 또다시 더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며 대선자금 규모 공개론도 나오고 있다.<이영성 기자>이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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