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은 우리 역사에서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대왕 탄신 600돌이 되는 날이었다. 한국일보는 탄신 600돌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 세종대왕」을 매주 월요일자에 연재하고 있다. 시리즈 덕분에 담당기자로부터 관련자료를 챙겨보면서 새삼 그 분의 업적에 고개가 숙여졌다. 세종이 박연을 시켜 전통궁중음악인 아악을 집대성한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편경제작 과정에 얽힌 일화는 그 분의 음악적 천재성을 보여준다. 편경은 옥돌로 만든다. 옥돌 16개를 「ㄱ」자 모양으로 다듬어 아래 위에 8개씩 2단으로 틀에 매달아 각퇴(뿔망치)로 쳐서 소리를 낸다.1427년 초여름 박연은 각고의 노력끝에 편경 등 악기를 새로 제작, 시연회를 가졌다. 연주가 시작되자 세종은 6틀로 편성된 편경의 음에 이상이 있음을 즉각 지적했다. 훗날 왕산악, 우륵과 더불어 3대 악성으로 추앙받게 되는 박연도 처음에는 그 차이를 잡아내지 못하고 재차 들어본 뒤에야 등줄기에 식은 땀을 흘렸다. 임금의 지적대로 좌측에 배치한 편경 3틀 가운데 경석 한 개가 다른 것에 비해 두텁게 다듬어져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이 전하는 이 기록을 읽으면서 며칠전 음악계 인사에게 들은 신년음악회에 얽힌 「참담한」이야기가 머리를 스쳐갔다. 매년 1월 신년음악회에는 대통령 등 3부요인과 외교사절이 참석한다. 어느 해인가 로시니의 「빌헬름 텔 서곡」이 연주곡으로 잡히자 『재미없다』는 이유로 느린 부분은 제외하고 빠른 부분만 연주하라는 당국의 명령이 떨어져 그대로 했다는 것이다. 또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연주곡으로 정했을 때 『왜 비용이 많이 들게 합창단을 세우느냐』는 「높은 분」의 친절한(?) 배려에 아연실색했다고 한다. 「교항곡 9번」이 합창교향곡으로 유명한데도 말이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분들의 문화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런 비화를 듣는 국민의 심정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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