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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포식 운영이 위기 자초/‘무정부상태’ 금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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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포식 운영이 위기 자초/‘무정부상태’ 금융시장

입력
1997.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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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신용평가능력 없어 땅 담보잡고 설·감으로 대출/최근엔 금융기관끼리 정보교환조차 막혀 더 혼란우리나라 금융기관에서 대출결정의 유일한 잣대는 담보다. 신용도 사업성 장래성 등 「보이지 않는 기업가치」는 평가하지도 않고, 평가할 능력도 없다. 금융기관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전당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부실우려기업에 대한 무차별적 여신회수로 시작된 「무정부상태」의 금융위기도 일차적으로는 금융기관들의 고객선별력, 즉 기업신용 평가능력결여와 정보력부재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26일 금융계에 따르면 한보사태 이후 삼미 진로 대농 등 재벌의 연쇄몰락이 이어지면서 금융기관의 대출심사기능은 사실상 정지돼 있다. 시장경색이 본격화한 지난 한달반동안 종합금융사들이 회수한 기업여신은 무려 2조3,000억원대. 은행권도 웬만한 신규대출은 동결한 상태다. 장·단기금리의 동반하락속에 돈이 남아돌아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소문만으로 앞다퉈 대출금을 빼는 「설과 감」의 영업이 전 금융권에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기업신용평가를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고 있다. S은행 여신담당간부는 『관치금융은 은행의 심사능력개발을 불필요하게 만들었다. 말이 심사이지 주로 하는 일은 대출서류의 형식요건검토가 전부고 서류행간에 숨겨진 사업성 등은 읽어내지 못한다. 외국은행들은 거래업체 오너의 건강상태까지 체크한다지만 우리는 한보철강같은 대형프로젝트와 관련돼 거액대출요청이 들어와도 현장을 가보는 일조차 없다』고 말했다. 통상 3년단위로 이뤄지는 은행의 「순환보직」인사 역시 심사전문가 양성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신용평가능력이 없다보니 오직 땅(담보)의 유무로 대출을 결정하지만 담보가치는 늘 가변적이어서 땅값 폭락시 담보는 오히려 부실을 부채질한다.

제2금융권의 실상은 더 심각하다. 한 종금사 관계자는 『솔직히 말해 은행의 대출여부를 보고 우리도 대출을 결정한다』며 『마땅한 심사자료가 없어 은행에서 빌려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은행과 제2금융권간 불신의 골이 깊어진 요즘엔 정보교환조차 차단되어 있다. H창업투자사 관계자는 『부도방지협약이후 모든 기업정보가 은행권에 독점돼 군소 금융기관들로선 상황파악조차 어렵다』며 『금융권내 심각한 「정보의 비대칭」이 혼란을 가중시킨다』고 지적했다. 독자적 고객선별능력이 없고, 정확한 정보도 없고, 그나마 한곳에 집중되다보니 결국 소문과 눈치로 영업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금융기관들이 기업평가능력을 갖췄다면 각종 악성루머가 정상적 금융시장작동을 마비시켜 기업생사를 좌우하는 난맥상은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란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금융기관의 심사평가능력부재, 전당포식 담보관행이 새삼스런 현상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하는 「자치금융시대」엔 치명적 걸림돌이다.<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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