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찍고도 ‘야 찍었다’/‘과소비 없애자’ 해놓곤 정작 자신은 흥청망청/말따로 행동따로 안된다96년 4월의 총선은 기막힌 기록을 하나 남겼다. 투표장 출구조사방법에 가까운 형태의 투표성향조사에서 야당의 압승을 자신있게 예측한 한 방송사와 여론조사기관은 그 후에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야당 압승이라는 조사결과와는 반대로 개표결과는 여당 압승이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고의건 실수건간에 조사대상자 선발을 잘못했을 때 이런 결과가 나타난다. 두번째는 응답자들이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으면 그런 일이 일어난다. 여당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이 조사에서는 야당 후보를 찍었다고 응답하면 그런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다. 96총선의 경우 조사자가 일부러 야당을 찍을 사람만 골라서 조사할 필요가 없었고 조사대상자 수도 충분했으므로 조사대상자 선발의 착오로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때의 착오는 결국 응답자들이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여당을 찍고 나오면서 야당을 찍었다고 대답한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다. 통계조사에서 허용되는 오답률 정도가 아니라 조사 자체의 신뢰성을 0점으로 만들 정도로 응답자들은 솔직하지 못했다.
우리 국민은 거짓말쟁이라고 전세계에 선전한 꼴이 되었다.
96년말께, 노동법 파동과 97년 초의 한보사건이 터지기 전의 우리나라 언론들은 과소비를 없애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아울러 너도 나도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적게는 약 70%, 많게는 90% 이상이 우리는 지금 과소비를 하고 있으며, 과소비가 경제난의 주범이고, 과소비를 억제해야 한다는 답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집단에서 30∼40%정도의 구성원만 일치된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 그 집단 전체의 행동은 그 견해대로 나타난다. 여론조사에서 50% 이상이 과소비가 문제라는 답을 할 정도면 이미 그 집단에서는 과소비가 문제되지 않을 정도로 소비형태의 변화가 있어야 그 조사가 제대로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여론조사에서 거의 전국민이 과소비를 걱정하고, 과소비 추방을 외치는 그 순간에도 룸살롱은 흥청거렸고, 백화점은 싸구려 물건을 파는 점포를 내쫓고 호화 고가품 점포를 늘리고 있었고, 해외여행은 비행기 잡기가 힘들 정도였다. 대부분의 국민이 과소비를 걱정하는 것으로 나타난 여론조사가 허위라는 증거다. 여론조사에서는 항상 과외가 나라를 망치니 과외를 없애야 한다는 결과가 나오는데 과외는 날이 갈수록 극성인 것도 같은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더욱이나 그렇게 행동할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으면서 조사하는 사람이 어떤 답을 원하는지를 눈치로 알아서 원하는대로 응답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국회청문회를 본 사람들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청문회의 내용이 거짓말 투성이였다는 검찰 수사결과를 들어야 했다. 공공요금을 안 올리겠다는 발표가 있으면 며칠 있다가 그 요금이 오른다든가, 어떤 제도를 절대로 안 고친다고 강조하면 할수록 국민들은 제도가 바뀌는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우리 국민은 훈련받아 왔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처럼 각종 비리추방 자체정화결의대회를 자주 하는 나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걸핏하면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 시민단체들의 결의가 보도된다. 과문의 탓인지는 몰라도 불행하게도 불매운동이 성공한 예를 본 일이 없고 자체정화대회를 마친 바로 그 뒤에서 똑같은 비리가 일어나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이다. 그런 행사는 말들이 많으니 체면치레로 한번 해본다는 투다.
이런 현상은 많은 사람들이 남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만 거짓말이고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민들이 깨끗한 정치를 원한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입후보자는 돈을 뿌릴 수 밖에 없고, 아무리 정치가가 자신은 깨끗한 정치를 위해 선물을 안 돌린다고 해도 「헛소리 하지 말고 표 얻으려면 야유회 경비를 내라」는 시민들의 버릇은 없어지지 않는다.
이런 자기도 모르게 하는 거짓말이 없어져야 나라의 기강이 선다.<신경정신과>신경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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