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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과 진각국사/차유적지·명차 ‘보고’(차따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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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과 진각국사/차유적지·명차 ‘보고’(차따라:4)

입력
1997.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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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승 진각국사 머물던 월남사터가 지금은 15만평 차밭으로/연 150만톤 완제품 생산전남 강진군 백련사 아암 스님과 다산 정약용 또는 다산초당, 해남군 대흥사 일지암 초의 스님과 추사 김정희, 보성군 벌교의 없어진 절터 징광사의 침굉 스님과 징광차밭, 승주군 송광사 보조국사 ……….

월출산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남쪽 땅은 차유적지의 보고이다.

지금 한창 따고있는 첫물차(첫번째 채취하는 차) 차잎이 싱그러운 월출산 자락은 고려중기 차승으로 유명한 진각국사(1178∼1234)가 오래 머물렀던 월남사터(전남기념물 125호)를 안고 있어 더욱 값진 곳이다.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평지에 자리 잡았던 월남사는 정유재란에 불탄뒤 폐허가 됐다. 지금 폐허에는 백제 3층 석탑과 차향기가 물씬 나는 이규보(1168∼1241)가 찬한 진각국사비, 석탑 뒷편에 법당터로 보이는 기단부와 초석들이 원형대로 남아 있다.

「아이를 부르는 소리의 메아리는

송라의 안개 속에 사라지고

차를 달이는 향기는 돌길의 바람에 퍼지네.

백운산 아랫길에 들어서자마자

암자 안의 노스님을 몸소 뵈었네」

(호아향락송라무 전명향전석경풍 재입백운산하로 기삼암내로사옹)

진각국사의 본명은 헤심, 호는 무의자, 속성은 최씨다. 차의 고장인 나주 화순에서 태어났다. 고려 20대 신종 4년(1201년)에 사마시에 급제하여 태학에 들어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님의 병소식을 듣고 고향에 돌아와 간병하다 어머니가 돌아 가자 송광사의 지눌 스님(보조국사)을 찾아 입산했다. 지눌이 지금의 백운산 백운암에 있을때 진각 스님이 지눌 스님을 찾아 백운산 험한 산길을 올랐다. 백운산 정상부근에 있는 암자를 앞에 두고 땀을 식히고 있는데 지눌 스님이 시자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읊은 시이다.

진각은 지눌 스님을 뵙자 마자 바로 이 시를 올렸다. 지눌은 이 시를 받고 들고 있던 부채를 진각에게 주었다. 진각은 『옛날에는 국사님 손안에 있더니, 이제 와선 제자의 손바닥에 있구나. 만약 열망과 광주를 만나면 흔들어 청풍을 일으키는 것이 좋겠다』는 게를 지어 올리고 차시 한수를 또 올렸다.

「향기로운 곳에서는 함부로 열지말고

냄새 속에서는 억지로 막지 말라

향천의 부처도 되지 않겠거늘

하물며 송장 썩는 나라가 되겠는가

솥에는 녹명(차의 일종)을 달이고

향로에는 안식을 사른다.

돌, 돌, 돌

어디 가서 선지식을 찾을까」

(향처물망개 취중휴강한 불작향천불 황위시주국 중전록명 노중소안식 심처구지식)

진각은 보조국사의 뒤를 이어 송광사 2대 조사가 됐다. 고종 21년 6월 마곡 등 제자들을 불러 『늙은 내가 오늘은 대단히 바쁘다』하니 마곡이 『무엇을 가리킴이신지 알지 못하겠읍니다』한다. 또 한번 『늙은 내가 오늘 몹시 바쁘다』했으나 마곡이 멍하니 있으니 미소를 지은 후 가부좌하고 죽었다. 중국이 만리장성을 자랑하듯 한국 불가에서는 진각국사의 선문염송을 자랑한다. 차의 고장에서 태어나 평생을 차와 함께 살다가 갔다.

진각국사가 한동안 머물렀던 차의 고향, 월남사 바로 위쪽 언덕배기 넓은 땅은 지난 81년부터 차제조회사인 태평양이 대규모 다원(월출다원)을 만들어 놓았다. 일제때 월남사터 옆에서 「백운옥판차」를 만들어 팔았던 이한영씨의 손자 이달묵(64)씨가 지금 이 다원의 소장으로 있다. 15만평의 이 차밭에는 수백개의 서리방지용 팬, 스프링 쿨러 등 최신시설로 한해 150톤가량의 완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차총생산량은 800톤 가량. 차는 지난 94년 부터 기호음료로 인기를 끌면서 없어서 못 팔 정도가 됐다. 91년 태평양이 해남쪽에 5만평을 조성한 것을 비롯 전국의 차제조업체들이 웬만한 곳이면 다투어 차밭을 조성하고 있지만 수요를 따르지 못해 작년의 경우만 태평양에서만 224톤을 중국에서 수입했다. 명산에서 명차가 나듯 월출산 산록 뿐 아니라 남쪽지방의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모든 비산비야가 차밭으로 덮일 날 멀지 않을 것같다.<김대성 편집위원>

◎알기쉬운 차 입문/“차 따르고 마실땐 3번정도 나눠서”

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차 마시는 모습은 다 큰 어른들이 소꿉장난을 하는 것 같다고 한다. 주전자는 어른주먹만하고 잔은 아기 주먹한한 것들을 벌려 놓고는 주전자에 물을 부었다가 잔에 따르고, 주전자에 차를 넣은 뒤 다시 물을 채우고, 비운 잔이 왔다 갔다…………. 무언가 신중하고 진지하게 기다리다가 조금씩 또르락 뚝뚝 따르는 것이 장난이라면 장난같고 예사롭지 않다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차생활을 해 보면 왜 그렇게 차를 신중하고 진지하게 기다리며 우려내는지 알게 된다. 차를 우려내는 것은 낚시와 같다고 한다. 우려내는 것을 서둘거나 너무 늦추면 맛있는 차 한잔이라는 큰고기를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너무 서둘면 싱거운 맹탕이 되고 조금이라도 늦으면 쓰고 떫어져 버린다.

차를 따를 때는 한꺼번에 주루룩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농도의 차가 고르게 섞이도록 2∼3번에 나누어 차잔에 따른다. 이때 따르는 차의 양과 우려내는 시간을 조절하여 농도를 조절한다. 말은 쉽지만 차맛의 90%가 여기서 결정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차를 마실때는 무엇보다 색, 향, 미를 맛본다는 사실을 머리에 두고 시작하면 마음이 한결 느긋해 진다. 먼저 찻잔을 잡고 찻잔에 어린 차색을 보고, 가까이 잔을 가져와 향기를 맡고 차를 입안에 굴리면서 3번 정도로 나누어 마시는 방법을 터득한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지만 차맛을 빨리 익히는 비결이다. 정답부터 말하면 색과 향 그리고 맛이 어울리는 차가 바로 잘 우려진 차 한잔이다. 차주전자와 찻잔을 데우고 차가 우려 나기를 기다리고 색향미가 어울리는 차의 퍼즐을 맞추면서 차생활로 접어들게 된다.

여기서 차주전자를 「다관」 또는 「차관」이라 하는 것을 먼저 알아두었으면 한다. 차가 낮설어 지는 이유중에 하나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는 차숟가락인 「차시」, 차를 끓이는 사람인 「팽주」, 물을 식히는 그릇인 「숙우」 등 한자로 된 전문용어를 쓰기 때문이다. 차 한잔을 마시려다 낯선 차맛과 전혀 별천지의 언어군을 만나면 보통은 시간의 긴 터널속에 들어 가 있는 듯 아득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박희준 향기를 찾는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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