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서로 죽이기” 악순환 거듭/정부도 제역할못해 “대란설” 난무금융시장이 혼란의 수위를 넘어 무정부, 무질서 상태로 치닫고 있다. 실물경제의 적재적소에 필요자금을 공급하는 「경제의 대동맥」기능 대신 금융이 기업을 죽이고, 기업은 금융을 고사시키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정책도, 신의성실의 신용원칙도 없이, 오직 무정부 상태의 혼란만 있고 시장질서를 지탱할 「보이지 않는 손」이 사라진 금융시장을 조기 정상화하려면 아직도 관치시대의 타성에 젖어있는 금융기관과 기업, 정부 등 3대 금융주체들의 역할 재정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5일 금융계에 따르면 한보사태 이후 넉달째 계속되고 있는 금융의 「아노미」현상은 ▲은행 종합금융 등 금융기관들의 심사기능정지와 ▲정부의 「시장감시자」역할포기 ▲구태적 기업경영 등에 기인한 것으로 금융시장 자체의 파국 뿐아니라 국민경제전체를 반신불수로 만들고 있다.
한 금융계 인사는 최근의 금융상황을 「3A」, 즉 『혼란스럽고(Anomic) 비정상적(Abnormal)이며 차라리 무정부적(Anarchical)』이라고 표현했다.
한보침몰이후 금융권엔 「준법대출」 「보신융자」같은 실질적 여신동결사태가 빚어졌고 결국 몇년에 한번 볼까말까하는 재벌의 몰락을 올들어서만 네차례(한보 삼미 진로 대농)나 목격해야 했다. 하지만 아직도 금융권엔 밑도 끝도 없는 「기업살생부」가 난무하고 「설」이 「설」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살만한 기업조차 죽음의 위기로 몰고 가고 있어 얼마나 더많은 기업이 죽음을 맞게 될지는 예측조차 할 수 없다. 기업의 억울한 희생을 막기 위해 고안된 부도방지협약은 돈이나 다름없는 어음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사실상 화폐·결제·신용질서의 위기를 촉발시키고 있다.
특히 기업의 긴급자금 수혈자였던 제2금융권은 집단적 자금회수로 기업의 숨통을 더 조이고 있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현 금융위기에 「공권력투입」(무차별적 대출중단·회수시 특검권발동)을 선언했지만 걷잡을 수 없는 시장혼란을 바로잡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문제는 혼란 자체보다 혼란을 교정할 기구와 원칙이 없다는데 있다. 전지전능의 해결사였던 정부가 반관치금융의 개혁물결속에 뒤로 빠지면서 금융시장은 갑작스런 「힘의 공백증」을 앓고 있다.
자율금융시대라해도 그 틀을 만드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그러나 정부는 개입자의 위치와 함께 감독자로서의 의무까지 포기하고 있다. 기업은 자신들의 몰락을 금융기관들의 얄팍한 이기주의탓으로만 돌리고 있다.
금융환경은 급변했지만 금융주체들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금융혼란은 자율금융시대의 「수업료」로 치부하기엔 너무도 값비싼 희생이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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