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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머드게임 열풍/“현실선 불가능한 창조적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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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머드게임 열풍/“현실선 불가능한 창조적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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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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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통해 1,000여개 서비스 즐기는 인구도 3만여명/그러나 진흙탕처럼 한번 빠지면 식음 전폐하고 몰두하거나 현실과 가상을 혼동한다는데…컴퓨터가 사이버 공간에 새롭게 창조해낸 고구려 국내성의 한 주막. 이곳에서 네티즌은 자신의 분신을 통해 괴물을 물리치고 정의를 실현하는 용맹한 전사로 다시 태어난다. 분신은 가상 세계에서 여우 사냥법을 배우고 가죽을 벗겨 옷과 무기를 구입하는 생존의 지혜를 배운다. 또 전능한 스승을 만나 신검합일의 무공과 귀신의 힘을 빌려 검의 위력을 증가시키는 검신검귀의 비법을 연마하며 예쁜 공주를 만나 결혼도 한다. 오랜 수련과 모험을 거친 후 수백명의 다른 분신과 힘을 합쳐 민초를 괴롭히는 악의 무리 「황룡국」을 정벌하고 고구려를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 전지전능한 지존의 위치에 오른다.

국내 청소년층에 급속한 인기를 얻고 있는 그래픽 머드게임 「바람의 나라」의 기둥 줄거리이다. 머드(MUD)는 다수가 창조하는 가상공간이라는 의미를 지닌 「멀티 유저 디멘션(MULTI USER DIMENSION)」의 머리 글자를 딴 약어. 인터넷이나 PC통신 등 컴퓨터통신망을 통해 수백명의 게임자가 가상공간에 모여 서로 경쟁하고 협동하며 자신이 꿈꾸어 왔던 이상향을 건설하는 온라인 게임의 한 종류이다.

머드게임은 90년 덴마크 코펜하겐대학의 「세바스찬 해머」 등 전산공학도 5명이 처음 개발한 후 인터넷을 통해 빠른 속도로 번져 현재 1,000여개의 머드게임이 인터넷을 통해 서비스되고 있다. 국내의 경우 90년대초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생들이 처음 소개한 후 대학을 중심으로 보급되다 93년 일반인을 위한 PC통신 상용서비스가 등장했다. 현재 「바람의 나라」 「쥬라기공원」 「단군의 땅」 등 18개의 상용서비스가 선보이고 있다. 서울대 포항공대 등 대부분의 대학도 1∼2개의 머드 게임을 인터넷을 통해 무료 서비스하고 있다. 머드 게임 인구도 도입초기 수천명에 불과하던 것이 최근에는 3만여명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하루 5시간 이상 머드 게임에 몰입하는 마니아도 3,000여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청소년층이 머드 게임에 빠지는 첫번째 이유는 사이버 공간을 통해 현실세계에서 도저히 불가능한 창조적인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은 이곳에서 꿈속에 그리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자신들을 위협하는 범죄집단 및 범죄자를 처벌하는 규율도 만든다. 지난해 국내 최초의 그래픽 머드 게임인 「바람의 나라」를 선보인 (주)넥스의 정상원 개발팀장은 『머드 게임은 게임 운영에 필요한 기본규칙 외에는 주어진 각본이 없어 네티즌들이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다』며 『이런 특성때문에 대학입시의 중압감이나 엄격한 도덕의 틀속에 갇혀 지내온 청소년들이 깊숙히 빠져들게 된다』고 말했다.

또 도덕관념에 구애받지 않고 살인 폭행 절도 성전환 등 현실에서 불가능한 이색경험을 할 수 있는 점도 네티즌을 유혹하는 요소. 머드 게임 마니아 김모(22·K대 계산통계학과 3년)양은 『게임에서 남자가 되고 싶으면 성전환수술을 해 용감무쌍한 전사가 되고, 부모 허락없이 마음에 맞는 사람과 만나 결혼도 할 수 있다』며 『옳고 그른 것이 분명하고 규격화한 현실세계보다 훨씬 재미있고 스릴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머드 게임은 강한 중독성때문에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야말로 진흙(Mud)탕에 발을 넣으면 깊이 빠져버리듯 머드 게임에 중독된다는 지적이다. 천리안 머드 게임담당 김철수씨는 『중독성은 퇴페성이나 폭력성에 기인한다기 보다 게임자들의 지적 욕구를 자극하기 때문에 생겨난다』며 『중고생들보다 지적능력을 어느정도 갖춘 대학생층에서 중독증세가 더 많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머드게임 중독자는 식음을 전폐하고 게임에 몰두하거나 현실과 가상 세계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 통신요금 지불 능력도 없이 게임에 탐닉하는 사람 등이다. 4개월째 머드 게임을 하고 있는 박모(25·K대 휴학생)군은 『게임에 몰입하다 보면 잠잘때도 괴물과 결투하는 꿈을 꾼다』며 『친구와 대화할 때도 머드 게임용어를 사용하는 등 가상세계와 현실이 혼동되는 경우도 종종있다』고 말했다

수십만원에 달하는 머드 게임 사용료를 마련하기 위해 청소년들이 탈선할 우려도 있다. 머드게임을 하려면 3분당 40원씩의 전화 통화료와 분당 20∼25원인 게임이용료를 내야 한다. 하루 5시간을 사용하는 마니아에게는 한달에 전화료 12만원, 게임이용료 18만원 등 모두 30만원이 청구된다.

서울 중앙병원 김주한(정신과) 전문의는 『전화선을 끊어버리거나 컴퓨터를 없앤다고 중독증세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게임의 중독성을 정보사회의 신종질환의 틀 속에 가두기 보다 인간 정신의 창조적 본성과 탐구정신을 갈구하는 청소년층의 자기표현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홍덕기 기자>

◎“나는야 머드게임의 지존”/가상세계에 개인왕국 건설/4명의 공주와 차례로 결혼/첫달 420시간 사용 신기록/한달 이용료만 100만원

신모(20·Y대 사회학과 1년)군은 두 개의 세상에서 살아간다. 하나는 「순돌이」라는 별명을 가진 평범한 현실이고, 또 하나는 전지전능한 지존으로 추앙받는 머드 게임속의 세계이다.

『머드 게임을 통해 제가 상상해온 멋진 신세계를 개척할 수 있어요. 또 지존이 되면 약한 사람을 도와주고 추종자들을 모아 왕국도 건설할 수 있구요』 머드 게임 경력 6개월 만에 지존의 위치에 오른 서군은 『머드 게임을 하다보면 현실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이색적인 경험을 하게 됩니다』라며 『초보 때 동료 게임자를 죽이고 나서 마음 속에 일어났던 미묘한 감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신군이 머드 게임의 마력에 빠져들기 시작한 때는 지난해 12월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본 직후. 머드 게임으로 신비의 이상향을 만들라는 컴퓨터 전문지 기사를 보고 첫달에 420시간을 사용하는 국내 신기록을 세웠다. 또 가상세계에서 사귄 4명의 공주와 차례로 결혼식을 올렸고 현재 부인인 2년 연상의 「리트라」와는 실제로도 친밀한 관계이다.

그러나 신군이 지존이 되기까지 투자한 돈과 시간은 엄청나다. 매일 하오 7시부터 다음날 상오 9시까지 밤을 꼬박 새우면서 하루 평균 14시간을 게임에 몰두했다. 신군은 게임을 즐기다보니 전화요금과 PC통신 한달 이용료가 100만원 가까이 나와 어머니에게 심한 꾸중을 들었으나 머드 게임을 쉽사리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홍덕기 기자>

◎머드게임이란?

머드게임은 수십∼수천명의 사람이 인터넷 등 컴퓨터통신망에 접속, 가상의 세계에서 채팅(컴퓨터대화) 등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며 임무를 완성해 나가는 다자간 온라인게임, 일반 컴퓨터 게임은 한사람이 정형화한 시나리오에 따라 컴퓨터와 일대일대결을 벌이지만 머드 게임은 다수의 게임자가 주어진 각본없이 협력 또는 경쟁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간다. 머드게임은 현재 인터넷에 1,000여종이 소개돼 있으며 게임 성격별로 전투위주의 디쿠(DIKU)머드와 임무완수 위주의 엘피(LP)머드로 구분한다. 머드게임은 가상공간에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특징 때문에 대인공포증 등 정신병 치료에 활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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