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14개국 50개 대학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서울대학교가 16위에 랭크되었다는 보도가 각 일간지에 소개되어 대학가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이는 홍콩의 시사주간지 아시아위크가 조사한 것으로 학교의 명성도, 교직원 수와 교수의 자질, 학생 선발의 공정성, 재정 확보도, 학비 부담도를 기준으로 하였다고 한다.지금은 세계적으로 그 분야에서 상당히 이름이 알려진 어느 교수의 유학시절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는 대학원 학생때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조교에 임명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첫 월급을 받고 보니 다른 학생들보다 액수가 훨씬 적었다. 행정당국에 문의를 하니 대학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는데 무슨 소리냐고 항변 하였더니 담당자의 대답이 『서울대학교가 당신네 나라에서는 최고인지 모르겠으나 그 대학에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교수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일이 없고, 서울대학 교수의 논문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학술잡지에서 본 일이 없으니 대학이라고 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물론 그 때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고 지금은 사정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우리나라에 이같은 홀대를 면할 수 있는 대학이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우연한 기회에 베이징(북경)의 칭화(청화)대학을 방문한 일이 있다. 면역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교수의 방에서 그의 업적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던 중 대학의 기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어느 대학이건 교수연구실에 들어서면 거의 예외없이 서가에 들어찬 수많은 전문서적들을 보게 된다. 그런데 중국의 그 교수 방에는 자그마한 서가에 자신이 발표한 논문들의 별쇄본과 너댓권의 전문서적이 꽂혀 있을 뿐이었다. 그는 돈도 없고 공부도 안하는 교수인가. 그렇지 않다. 그가 설명하는 업적의 대부분은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유명 학술잡지에 발표된 논문들이었다. 대학의 도서관에 필요한 전문서적이 거의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중국 상하이(상해)에는 기생충연구소라는 것이 있다. 세계적인 연구업적을 가지고 국제공동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연구소의 하나인데 가장 자랑하는 것이 도서시설이다. 즉 전세계의 기생충 관련 모든 문헌을 빠짐없이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전문학술잡지는 아쉬운대로 큰 불편없이 찾아볼 수 있으나 단행본의 경우는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교수들 각자가 없는 돈에 무리를 해서라도 자신이 필요로 하는 서적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학으로서의 기본도 갖추어지지 않은 대학이 아시아에서 16위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과분하게 평가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욱 알 수 없는 것은 현존하는 대학의 연구인력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부실대학을 늘려만 가는 정책 입안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것이다. 기본도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도약을 하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근자에 우리나라 대학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목적으로 대학평가라는 것이 실시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나라 대학들간의 상대평가여서 거기서 우수대학으로 평가된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차마 세계수준에서의 절대평가는 엄두를 낼 수 없었는지 모르겠으나 우리나라가 아시아에서 차지하는 정치 경제적 비중을 감안하더라도 서울대학교가 아시아에서 16위에 머물렀다는 것은 문화민족으로서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시아에서는 그렇다치고 세계적으로는 어떤지 겸허하게 살펴볼 때라고 생각한다.
중국에서는 21세기까지 세계수준의 대학을 100개 만들겠다는 211계획이 현재 추진중에 있다. 우리나라에는 세계수준의 대학이 하나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대학마저도 하향평준화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세계화를 부르짖으면서 대학다운 대학이 하나도 없는 형편에 월드컵대회만 성공적으로 치르면 나라가 발전하고 국위가 선양되는 것인지. 이제라도 진정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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