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인 주자 회동서 공식화 당초계획 삐끗/어느쪽 실수이든지 ‘호흡불일치’ 노출신한국당 이회창 대표는 과연 김영삼 대통령의 의중을 제대로 소화하고 스스로 「대선자금 공개불가」라는 총대를 멘 것일까. 이같은 의구심은 지난 23일 청와대 주례보고 직후 이대표가 대선자금 공개불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이후 여권핵심부의 몇몇 인사들로 부터 제기돼 왔다.
이들은 이대표가 김대통령의 입장을 옹호하는 나름의 이유를 헤아리면서도 『이대표가 타이밍을 못 맞추고 성급하게 앞서 나간 것 같다』는 지적을 숨기지 않고 있다. 여권 핵심부는 특히 야권이 「대통령 하야」까지 거론하며 대선자금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상황에 이르자 더더욱 대응방식의 문제점을 반추해 보고 있다. 청와대측은 일단 「이대표의 성급한 처신」이 불만스럽다는 표정이다. 대선자금문제에 따른 정황악화의 책임을 은연중 이대표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우선 이대표가 성급했다고 보는 여권 핵심부의 지적은 대충 이렇다. 지난주 청와대 주례보고때 김대통령은 이대표와 마주앉아 대선자금문제에 대한 입장을 솔직하게 피력했다. 이 자리에서 김대통령은 지난 92년 대선 당시 여야 모두 법정선거비용을 초과해 선거를 치른 것은 사실이지만 이 시점에서 국민들에게 대선자금 규모를 확실하게 밝히기에는 기술적으로도 어려운 문제들이 많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정작 김대통령은 이같은 입장이 이대표의 입을 통해 공식화하길 원했던 게 아니고, 조만간 8명의 신한국당 대선주자들을 모아놓고 대선자금문제의 매듭을 위한 같은 맥락의 입장설명을 하는 자리에서 정리되길 바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김대통령이 추후 8명의 대선주자 앞에서 대선자금에 대한 입장설명을 하겠다는 구상을 이대표에게 정확히 주지시켰는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여권 핵심부는 결과적으로 이대표가 너무 성급하게 대선자금문제를 매듭 지으려 했고, 공교롭게도 여권의 사정방침이 전해진 시점과 대선자금 공개불가 발표시점이 겹쳐져 여론의 반발을 부추기는 등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보는 것이다. 이대표가 자신의 입지를 고려한 나머지 서둘러 김대통령의 대선자금 공개 불가입장을 밝혔다는 것이 핵심부의 해석인 것 같다.
한마디로 이대표가 지난주 청와대 주례보고 직후 밝힌 대선자금 공개불가 입장은 내용은 맞는 것이지만, 여권이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는 형식에 있어서는 차질을 빚은 셈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김대통령과 이대표 사이에 대선자금문제의 매듭을 짓는 방식에 있어서 충분한 사전교감이 없었고, 호흡이 잘 맞지 않았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만일 이대표가 이같은 김대통령의 의중을 알았음에도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대선자금문제를 앞서 짚고 나갔다면 이는 또다른 차원의 당내 불씨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정진석 기자>정진석>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