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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의 정치학(김성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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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의 정치학(김성우 에세이)

입력
1997.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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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를 9개월 남긴 김영삼 대통령의 정부를 단적으로 어떻게 성격지울 수 있을까. 그냥 이른바 문민정부라고만 해가지고는 앞으로도 문민정부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특징적인 것이 못된다. 한국병이 치유되고 신한국이 건설되었으면 「신한국정권」의 타이틀을 얻었을 텐데 좌절하고 만 것은 아쉽다.그런 채로 굳이 김영삼정부의 특성을 찾아내란다면 「파괴성」에 있지 않을까 싶다.

파괴라고 해서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이 아니고 모든 파괴가 다 비건설적인 것도 아니다. 개혁도 파괴요 혁파도 파괴다. 파괴없는 건설은 없다고도 한다.

김영삼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맨먼저 한 일이 궁정동 안가의 파괴였다. 안가란 것이 비록 권위주의 시절의 밀실정치가 남긴 악의 소굴이더라도 현직 대통령이 시해된 역사의 현장이라면 서둘러 부수기만 할 일은 아니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다음에는 청와대의 구본관 건물을 철거해 버렸다. 일정때의 총독관저라고 해서였지만 이 건물에 총독이 거처한 것은 불과 6년에 지나지 않고 건국이래 40여년동안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집무해 온 현대정치사의 총본산이었다. 역대 대통령의 사료들을 모은 대통령기념관으로 보존할 수도 있었다.

파괴의 하이라이트는 구총독부 건물이다. 광복 50주년을 맞아 일제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명분으로 건물의 목을 댕강 잘라내는 단두식을 가졌고 지금은 건물 전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철거 여부를 둘러싸고 찬반 양론이 팽팽한 가운데 철거쪽으로 결단을 내린 것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새 국립박물관을 짓기도 전에 부랴부랴 부수기부터 할 것인가에는 당시에도 의문이 제기되었었다. 광복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라면 있는 것을 파괴하기 전에 민족의 웅지를 상징하는 거대한 기념물을 건설했어야 옳았다.

이런 파괴분위기에 휩싸여 한남동 외인아파트를 순식간에 폭삭 주저앉히는 쇼까지 벌였고 이런 파괴붐에 덩달아 성수대교와 삼풍아파트가 제물에 무너지는 참사도 겪었다.

김대통령의 집권동안은 이렇게 파괴와 붕괴의 연속이었다. 사실 무너뜨리기만 했지 세운 것이 없다. 이 파괴를 보상할 만한 뚜렷한 새 건설이 있지 않았다.

파괴는 가시적인 건조물에 그친 것이 아니다. 국민의 정신면과 생활면에까지 파고 들었다.

이른바 「역사 바로세우기」는 역사의 파괴로 시작된 것이다. 게다가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것은 여간 대단한 파괴력이 아니다. 일찍이 그렇게 큰 망치를 휘둘러 본 대통령이 없다. 그리고 집권 초기에 보인 여러가지 개혁의 의욕들은 이 파괴력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었다.

김대통령의 파괴력의 출처는 오랜 야당생활의 투쟁경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부수지 않고는 야당이 살아남을 수 없었다. 파괴가 곧 저항이었다. 김대통령이 즐겨 쓰는 승부수인 정면돌파란 것도 돌진의 파괴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대통령으로 당선되기까지 장애물을 돌파하는 그의 무서운 파괴의 행진은 현란한 것이었다.

집권하면서부터는 이 파괴력에 권력의 힘이 실렸고 그러니 엄청난 힘으로 가중될 수 밖에 없었다. 휘두르는 권력의 원심력을 이겨내지 못한 이 힘이 파괴의 시리즈로 이어졌다. 파괴력이 정당성을 가질 때는 권력행사의 추진력이 되지만 두 힘이 야합할 때에는 엄청난 재난을 가져올 수 있다.

국민들은 그 핵펀치로 부수어야 할 것은 모두 부술 줄 알았다. 3김체제의 파괴를 기대했다. 실로 김대통령의 집권동안 정치력은 3김의 해체에 주력했고 그 때문에 여러가지 무리도 따랐다. 그럼에도 그 파괴는 실패했다. 여러 개혁을 통한 구질서의 파괴를 바랐다. 그러나 그 개혁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정작 파괴해야 할 것은 파괴하지 못한 것이다. 파괴가 건설적인면 보다는 비건설적인 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결국 파괴하지 못한 것은 한국병이요 건설하지 못한 것은 신한국이다.

파괴는 그것이 철저하지 못하거나 방향이 빗나갈 때 자신의 파괴력에 자기가 보복당하는 경향이 있다. 이때 자기파괴에 이르게 된다. 김대통령의 아들이 구속까지 되고 또 어떤 파동이 올지 모르는 오늘의 파국은 바로 이 파괴의 부메랑현상에서 나온 것이다. 자업자득과도 같은 자파자기다. 이것이 지금 보고있는 비극의 본질이다.<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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