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기준·원칙은 ‘말뿐’ 루머·감으로 대출·회수 결정/멀쩡한 기업도 자금악화설 나돌면 부도위기 몰려『옥석을 제대로 가릴줄 모르는 전근대적 여신관행이 멀쩡한 기업을 부도위기로 내몰고 있다』
객관적 심사기준이나 합리적인 원칙없이 루머에 편승, 거액을 대출해 줬다가 대출금을 갑자기 회수하는 「뇌동현상」 또는 「패거리 여신」이 금융계에 횡행하면서 경제질서가 파괴되고 있다. 건전한 중견기업이 부도설에 휘말려 주가폭락 대출금회수 등으로 곤혹을 치르기 일쑤고 일부 기업은 악성루머로 흑자부도위기에 몰렸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 일까지 나타나고 있다.
22일 금융계에 따르면 종합금융 등 제2금융권은 물론이고 은행을 포함한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이 루머와 감에 의해 대출금을 일시에 회수, 관련기업들의 경영을 어렵게 하고 있다. 경쟁력이 없는 한계기업은 구조조정과정에서 당연히 사라져야 하나 적지 않은 금융기관들이 루머에 의존하여 갑자기 대출금을 회수하는 바람에 많은 중견기업들이 경쟁업체가 퍼트린 악성루머로 큰 곤혹을 치르고 있다.
실제로 종합금융 보험 할부금융 파이낸스 등 금융기관들은 최근 자금악화설이 나돌고 있는 10여개 중견기업들에 대한 여신을 급속히 회수하고 있다. C종금의 한 간부는 『자금악화설이 나도는 기업에 대해서는 어음의 연장기간을 최대한 1주일내로 단축하고 연장때마다 일부상환을 조건으로 내걸어 여신을 줄여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에서도 악화설이 나도는 기업의 기업어음(CP)에 대해서는 매입을 극도로 꺼림으로써 기업들의 자금난을 심화시키고 있다. 실제로 A은행의 신탁계정에서 CP매입이 차지하는 규모는 3월말 2조 7,505억원대에서 20일 현재 2조5,458억원으로 줄었다.
문제는 이들 금융기관의 여신운용 원칙과 심사기준에 있다. H종금 관계자는 『자산건전성, 경영능력 등 20개 항목에 100점 만점을 매긴 심사표를 작성해놓고 있지만 실제로 이를 심사에 이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털어놓았다. 모종금의 한 실무자는 『지나친 영업확장이 경영부실을 초래할 것으로 판단, 진로그룹에 대한 여신을 반대했지만 경영진이 「다른 금융기관들은 돈 못줘서 안달인데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고 밀어붙여 결국 수백억원대의 부실여신을 떠안게 됐다』고 말했다.
6대 선발종금사의 경우도 심사담당 직원은 부서장을 포함, 5명 안팎에 지나지 않고 여타 종금사나 할부금융은 말할 것도 없어 정확한 여신운용 심사가 이뤄지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최근에는 은행권에도 부도방지협약 적용대상기업 리스트가 나돌고 있을 정도이다. 때문에 시중의 소문이나 상황변화에 따라 특정 기업에 대해 일시에 자금을 회수, 해당기업이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21일에는 해태그룹이 부도방지협약 대상으로 선정될 것이라는 루머가 증권가에 퍼져 주가가 하한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루머를 퍼뜨린 혐의로 정보지 사장을 사직당국에 고발한 이 그룹 임원은 『금융기관들이 제대로 된 정책이나 일관된 방향이 없어 기업들의 피해가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일시에 급성장했다가 순식간에 공중분해된 한보그룹 우성건설 유원건설 등과 사실상 부도처리된 진로 등도 1차적인 책임은 기업측에 있지만 금융기관들의 주먹구구식 패거리 여신관행이 이를 부채질했다고 볼수 있다.
경기가 침체될때마다 산업과 금융 양 부문이 부실 상승효과를 보여온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금융권의 심사 및 영업관행이 선진화하고 정확한 정보공유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금융계의 지적이다. ◎강 부총리,제2금융권에 자금조기회수 자제 당부키로
강경식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은 23일 종금사 및 할부금융회사 사장단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오찬간담회를 갖는다.
강부총리는 이날 오찬에서 부도방지협약에 따른 종금사 등 제2금융권의 자금조기회수 움직임과 관련, 건전기업에 대한 자금조기회수를 자제해줄 것을 당부할 것으로 알려졌다.
오찬에는 이수휴 은행감독원장 주병국 종합금융협회장을 비롯 30개 종금사 및 10개 할부금융회사 대표가 참석할 예정이다.<김준형 기자>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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