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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7.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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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한인들의 영주귀국을 위해 애쓰던 박해동(77) 사할린 한인노인회장이 한많은 생을 마감, 20일 고향 울산땅에 묻혔다. 맏형 이름으로 나온 징용통지서를 들고 대신 사할린에 끌려간 것이 22세때인 1943년이니 반세기도 넘어 주검으로 돌아간 고향이다. ◆그의 죽음은 한 미 일 소 태평양전쟁 당사국 모두에게서 버림받은 4만여 사할린동포의 비극을 상징한다. 한소 수교후 극히 일부의 귀국이 실현됐지만 대다수 동포들은 망향의 고통속에 살고 있다. 생활기반을 버릴 수 없어 주저앉은 동포도 많지만 죽어서 뼈라도 고국에 묻히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다. ◆그는 91년 처음 고국에 와 영주귀국을 하고 싶어도 경제력이 없어 못오는 동포들의 슬픔을 전하면서 정부와 국민의 관심을 촉구했다. 92년부터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운동을 계속하다 지난해 가을 서울에서 암으로 쓰러졌다. 일단 돌아간 그는 죽어서나마 선산에 묻히고 싶어 지난 2월 귀국, 투병생활을 해왔다. ◆사할린한인회 조사로는 92년 당시 영주귀국 희망자는 1만3천4백84명이었다. 현지 태생 2, 3세를 망라한 숫자이다. 이들 모두의 귀국이 무리라고 판단한 그는 93년부터는 돌아갈 날이 올 것을 믿고 무국적자로 살아온 무의탁자 등 고령자 5백22명의 귀국이 시급하다고 외쳤으나 정부는 남의 일인양 팔짱만 끼고 있었다. ◆작년 10월 현재 그들중 1백81명이 망향의 한을 안고 죽었다. 노구를 의탁할 곳이 없어 그렇게 죽다니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일본정부가 그들의 아파트 지을 돈까지 냈는데 우리가 머뭇거리느라 착공도 못하니 말이다. 아파트는 8월께야 안산에 착공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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