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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룡 의원 부인 김열자씨(내 남편 이런 사람:7·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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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룡 의원 부인 김열자씨(내 남편 이런 사람:7·끝)

입력
1997.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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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긴 정치열정 자랑스러워요”/교도소 들락거릴때 가장 힘들었던 시절/“아빠 어디갔냐”에 “외국출장” 대답도/평생 속썩인 남자 아직 월급구경 못해/한보돈 측근 수수 나중에야 알아 ‘야속’―김덕룡 의원이 매일 새벽산행을 한다는데 함께 하는지요.

『저는 새벽에 못 일어나요. 남편은 새벽 4시에 우면산이나 청계산에 갔다가 5시30분께 간단히 미역죽과 과일 몇조각을 먹고 나갑니다』

―아침 식사를 챙겨주시느라 힘들겠네요.

『사실 제 친정어머니께서 챙겨주십니다. 제가 병원 출근때에 맞춰 일어나면 대개 남편은 나가고 없는 때가 많아요』

―친정어머님을 모시고 사시는군요.

『모시기는요. 그 반대입니다. 남편이나 저나 바깥 일을 하니까 집안 일을 맡아서 해주시는 거지요.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회동 친정집에 자주 가시는데 양쪽을 왔다갔다 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중요한 문제가 생기면 남편과 상의하지 않습니까.

『애들 문제 등 가정사는 상의합니다. 하지만 정치얘기는 집에서 안합니다』

―김의원이 한보리스트로 곤혹을 치를때에도 아무 얘기도 안했습니까.

『그 때야 안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자존심이 강한 남편에게 「당신 돈 받았소」라고 묻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신문에 난 몇몇 정치인들을 슬쩍 거론하며 「이 분들은 왜 신문에 자꾸 나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면 남편은 「그거 다 틀린 내용일거야」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김의원의 경우도 측근의 자금수수가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정말 속상한 일입니다. 남편은 측근들, 동생들에게까지 일일이 확인했어요. 검찰에 출두하는 날도 남편은 이두용씨의 수수사실을 전혀 몰랐으니, 야속한 일이지요. 다른 것은 몰라도 남편은 거짓말은 안합니다』

―한보사건때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로 생각하나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평생 속을 썩고 살았는데요. 남편에게 마이너스될까 걱정이네요(웃음)』

―그러면 언제가 가장 힘들었습니까.

『다 잊어버렸어요.(한동안 침묵) 교도소 들락거리고 형사들, 정보원들이 집 앞에 살다시피 할 때는 참 어려웠지요. 73년에서 84년까지 반포1단지에 살았는데, 그 때 남편은 서너번 감옥에 갔습니다. 처음 감옥갔을 때 큰애(원일)와 작은 애(도형)가 「아빠 어디갔냐」고 물어요. 그래서 「외국으로 출장갔다」고 답했지요. 출옥때 남편은 명보극장앞 장난감가게에서 외제장난감을 사들고 들어갔어요. 애들이 좀 크니까 아빠가 자랑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아들이 어린시절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겠군요.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감옥을 갈때도 그랬지만, 88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에도 처신이 쉽지않았습니다. 과천으로 이사갔다가 다시 서초동으로 왔는데, 당시 「8학군 열기」로 순번이 밀려 둘째를 집근처 중학교에 보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가회동 친정집 부근의 중학교에 다니게했는데, 애가 의원 아들이라는 사실을 숨겼습니다. 친정집 문간방에 책상 하나만 덜렁 놔두니까 친구들이 「살기가 어려워 할아버지 집에 산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어느 날 쌀을 모아서 도와주러온 적도 있답니다』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기뻤을 때는 언제였습니까.

『아마 남편이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됐을 때였던 것같습니다』

―국회의원 당선된 이후부터 김의원이 월급을 집에 가져다 주었습니까.

『아니요. 지금껏 한 번도 가져온 적이 없어요. 최소한 월급봉투라도 보여줘야하는 것 아닙니까. 괘씸해요.(웃음)』

―그러면 다른 돈이라도 가져다 줍니까.

『남자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정치자금은 그야말로 밖에서 몽땅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저 월급 한번 가져오라는 것이지요』

―대통령 부인이 되고싶다고 생각하신 적이 있습니까.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정치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남편이 정치에 열정을 바치고 살아온 점은 인정합니다. 저도 의사로서, 어머니로서 열심히 살았습다.』

◎이렇게 내조한다/“정치는 결국 본인이 하는 것” 소리없이 곁에서 지켜보기

김열자씨는 남편인 김덕룡 의원을 애써 포장하려 하지않는다. 흠이나 불만도 숨기지않고 얘기하는 편이다. 「있는 그대로의 김덕룡」을 드러내는 것이다. 김의원을 「평생 속썩인 남편」이라고 말할 정도다.

행사에 참여하는 식으로 드러내놓고 내조하는 모습도 보이지않는다. 심지어 선거 때에도 김의원의 선거캠프에 들른 적도 없다. 비서진들에게도 부탁을 하는 법도 없고, 전화도 거의 하지않는다.

그렇지만 김의원의 보좌진들은 김씨를 「대단한 후원자」로 여기고 있다. 김씨가 겉으로는 『정치가 싫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김의원에 도움이 될 일을 소리없이 해내고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김씨는 보좌진들도 모르게 김의원과 가깝게 지내는 의원·지구당위원장들의 부인들을 따로 만나고 있다. 김씨는 다른 의원 부인들에게 「정치인들의 흠」을 함께 꼬집으면서도 『남자들이 뜻을 같이했으니 우리도 친해지자』고 말한다. 그녀는 워낙 가식이 없어 만나기가 편하고 한번 만난 사람들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다.

김씨는 이런 내조역할이 알려지는데 대해 달갑지않게 생각한다. 김씨는 『의원 부인들과 만나는 것은 여자들끼리 남편 흉 좀 보자는 것』이라며 『정치는 결국 본인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나는 「내과의사 김열자」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게 남편을 돕는 일 아니냐』고 반문한다. 남편을 믿고 그가 마음편하게 정치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발 비켜서서 지켜보는게 그녀의 정치인 내조관이다.<이영성 기자>

□약력

◇출생:1942년 2월3일, 평북 의주 출생(55세)

◇학력:재동초등학교, 경기여중·고, 이화여대 의과, 연세대 의과대학원

◇주요경력:국립의료원 내과, 고대 한양대 외래교수, 현재 자인내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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