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직전 황해도 서흥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한 적이 있다. 감격의 8·15직후인 8월17일 상오 10시께였던가. 군민 5,000명(?)쯤이 교정을 메웠는데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거나 무궁화를 꺾어들고 모인 자리에서 나는 지휘봉을 들고 생후 처음 애국가 부르기를 지휘한 일이 있다.참으로 감동적인 시간으로 기억이 생생하다. 애국가 가사를 프린트해서 나눠 주었는지는 기억에 분명치 않으나 구곡에 의해 4절 끝까지를 열창했는데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라는 대목에선 목청이 높아졌던 것 같다.
오늘날 학교교육에선 물론이요, 공공행사때 애국가는 안익태의 신곡에 의해 불리고 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1절만 하는 것이 통례인 듯하다. 그런데 1절만 부를 것이 아니라 4절까지 불러야 한다는 말이 나온 일이 있었던 듯 한데 일부(?)방송에서 4절까지 부르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최근 필자는 어느 공기업 신입사원 한자능력 평가시험에 청탁을 받고 문제를 낸 일이 있는데 애국가 전가사 중 한자어를 한자로 쓰게 한 일이 있다. 물론 의도적인 출제였다. 잠시라도 나라사랑을 생각하게 하자는 뜻도 있었지만 제대로 뜻이나 알고 불러왔는가를 알아보자는 생각과 한자공부에 자극을 주자는 뜻이 있었다. 물론 한글전용교육으로 애국가 가사를 한자로 접한 일이 없는 이들이므로 그 성적이 좋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들이 4년제대학 또는 2년제 전문대 졸업생이므로 한문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를 배운 것이 사실이요, 고교까지엔 12년간, 대학까지엔 14∼16년 학교교육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
이 시험에 대졸은 119명, 전문대졸은 144명, 합계 263명이 응시했다. 그런데 각 한자어별 정답자는 다음과 같았다. ()안의 숫자는 정답자 수이다.
공활(0) 보우(4) 철갑(7) 화려(11) 기상(12) 만세(16) 안익태(16) 보전(21) 무궁화(37) 불변(49) 단심(59) 일편(67) 백두산(75) 애국가(97) 충성(113) 동해(224)
매우 흥미있는 통계다. 「공활 보우 철갑」 등은 일상생활에서 별로 쓰이지 않는 말이므로 정답자가 적은 것으로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 한심한 통계를 놓고 깊이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일차적인 책임은 학교에 물을 수밖에 없을 듯하고 궁극은 정부의 그릇된 어문교육 정책의 탓으로 돌릴 수 밖에 없다.
초등학교때부터 음악시간이나 그밖의 기회에 애국가를 가르칠 때 「사랑애 나라국 노래가」―나라를 사랑하는 노래―라고 가르쳐야 했다. 「지킬보 도울 우」―지키고 도와서―, 「빛날화 고울여」―빛나고 고운 강과 산―, 「지킬보 온전전」―온전하게 지키세―로 가르쳤어야 옳았다. 그래야 애국가를 부르는 뜻이 있을 것이다. 애국가는 왜 부르는가? 가사의 뜻을 제대로 알고 부르게 하는 것이 교육의 바른 길이다.
그런데 「삼천리」의 「천」을 틀린 37명중 「천」으로 쓴 사람이 28명이고 「천」으로 쓴 사람이 15명이었다. 또 「이」를 틀린 사람 31명중 27명이 「이」로 적었다. 이런 오답이 나온 것에 정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대졸자들의 한자 인지도가 이렇다는 점을 교육자, 교육관계기관, 정치계, 언론계 등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현재 초등학교 3학년부터 주 1시간씩의 한자교육을 학교재량에 의해 하게된 것은 종전에 비해 진일보이긴 하나 아직 미흡하다. 국어교육의 일환으로 필요한 경우 한자를 섞은 교과서로 교육을 하는 것이 정도임을 인식해야 한다.
한·중·일 삼국중 유독 우리만 상용한자가 없다. 아태시대에 대비하여 2,000자정도의 상용한자 제정이 시급하다. 오늘날 강조되고 있는 교육개혁의 핵심이 한자가 섞인 교과서로 이루어지는 국어교육의 혁신에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한국어문교육연구회장>한국어문교육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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