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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문화계 중추로 성큼 커버린 가사라기 동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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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문화계 중추로 성큼 커버린 가사라기 동인들

입력
1997.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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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신림동 골목 토론의 밤이 그립다/서울대 국문과 주축 ‘예술운동’의 결실/문학·평론·영화·방송 등 각 장르의 허리를 이루는 면면들세월이 흐르면서 문화적 지향도, 활동분야도 달라졌지만 젊은 한 시절을 문학적 열정 하나로 살아 낸 동인들이 있었다. 4·19직후, 김현(작고) 김승옥 김치수 최하림씨 등 저 「산문시대」 동인들이 이뤄낸 한국문학의 광휘. 「산문시대」를 기억한다면 90년대에는 「가사라기」(이하 가사라기로 표기)를 주목해 보자.

소설가 채영주 주인석 이인화, 문학평론가 한기 서영채 류보선 권성우 강상희 장은수 김동식, 시인 안찬수 김중식, 대중음악평론가 강헌, 영화인 육상효 , 방송인 김재홍씨. 90년대 문화 각 장르의 허리를 이루는 면면들이다.

「예술」보다 「운동」이 요구되던 80년대초 캠퍼스 분위기. 서울대 국문과생을 중심으로 한 이들은 『뜻 있는 놈들끼리 모여 「예술운동」으로 저항해 보자』는 몸짓으로 「가사라기」를 만든다. 「가사라기」는 「벼나 옥수수 따위의 수염동강」을 뜻하는 「까끄라기」의 옛말로 하잘 것 없는 존재란 의미다.

81학번 서영채(한신대 교수), 강 헌씨와 한 기(77학번·안성산업대 교수)씨 등이 주축이었다. 서씨는 평론집 「소설의 운명」으로 90년대 대표적 비평가로 꼽힌다. 강씨는 대중음악 평론이라는 분야를 사실상 개척했고, 한씨는 문단에서 독자적 목소리로 주목받는 평론가다. 당초 학문·비평의 기풍이 훨씬 강했던 서울대 국문과의 전통에서 벗어나 이들은 「창작」을 앞세우려 했다. 뜻을 같이 하는 이들끼리 매주 토요일 하오 서로의 작품을 놓고 가차 없는 합평회를 한 뒤 신림동 일대에서 이어지는 술과 토론으로 밤을 지샜다. 그 결과가 매년 한차례 정도 동인지 「가사라기」로 모아졌다.

서씨와 함께 「문학동네」 「리뷰」 편집위원인 류보선(81학번·군산대 교수)씨, 「포에티카」편집위원 권성우(82학번·동덕여대 교수)씨, 최근 무크 「새로운」을 만든 강상희(83학번)씨, 「세계의 문학」 편집장 장은수(86학번)씨, 「문학과 사회」 편집동인 김동식(86학번)씨 등이 합류했다. 역시 비평 쪽이 많지만 창작 쪽도 만만치 않다. 소설 「웃음」 「연인에게 생긴 일」의 채영주(81학번)씨는 사회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다소 뒤늦게 뛰어든다. 희곡 「통일밥」의 작가 주인석(82학번)씨는 서영채씨, 최근 장편소설 「인간의 길」로 박정희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이인화(85학번·이화여대 교수)씨 등과 함께 계간 「상상」 창간의 주역이기도 했다. 안찬수(82학번·강 출판사 기획실장) 김중식(84학번)씨는 촉망 받는 젊은 시인이다. 영화 「장미빛 인생」 「축제」의 시나리오를 쓴 육상효(82학번)씨는 감독데뷔를 준비중이고, 노동운동영화 「파업전야」를 만든 김재홍씨는 KBS카메라맨.

이들의 동인활동은 전문적 문화운동 집단으로 자리잡아 보자는 포부로 88년 이름을 「예술운동」으로 바꾸면서 계속됐지만 문화감각의 차이가 노정되면서 90년께 사실상 중단된다. 『10여년 같이 공부한 동인들이 문화 각 분야에 대거 진출해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한국문화의 층이 얇다는 증거』라는 것이 한 동인의 반성적 발언이지만 이 말 자체가 「가사라기」의 결실에 대한 반증도 된다. 『문학을 하는 일이 화려하고 배부르고 등따신 시대에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20대를 보낸 시대와 언제나 함께 있었던 절망의 그 싸늘한 촉감이 그리워진다』(서영채 「소설의 운명」에서)는 의식이 있는 한 그들의 활동은 기대되는 것이다.<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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