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씨를 마침내 구속한 것은 이번 사태의 끝인가 시작인가. 사람에 따라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그를 사법처리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짓고 하루빨리 정국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의견, 현직 대통령의 아들을 구속시킬만큼 민주주의가 성장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한꺼번에 욕심부리지 말자는 의견, 한보사태의 「몸통」은 대통령이니 대선자금 수사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의견, 아들의 구속을 지켜보는 대통령의 심정이 오죽하겠느냐는 동정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우리는 그중의 어떤 의견에도 사로잡히지 말고, 이번 사태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검찰은 그를 탈세와 알선수재혐의로 기소했는데, 아무런 조건없이 받았다고 주장하는 소위 「떡값」에 대해 탈세혐의를 적용한 것은 좀 궁색해 보이긴 해도 중요한 대목이다. 엄청난 액수의 돈이 오간 사건에서 정치자금이냐, 뇌물이냐, 후원금이냐는 분류에 따라 죄가 되고 무죄가 되는 현행법의 모순은 국민이 보기에 역겨운 말장난일 뿐인데, 검찰이 이에 대해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이 사건에서 법적인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덕적인 문제다. 많은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설마, 설마 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았었다.
『돈을 한푼도 안받겠다고 국민앞에 수없이 다짐해 온 대통령의 아들이 설마 돈을 받지야 않았겠지. 아버지를 도우려고 유능해 보이는 사람들을 추천하다가 부작용이 생겼겠지』라는 것이 양식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기업들로부터 수십억원의 돈을 받고, 아버지가 야심적으로 단행한 금융실명제를 피해 돈세탁을 하고, 대선자금에서 남겼을 것으로 짐작되는 수십억원을 착복하고, 100억원대의 비자금을 관리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설마 설마하던 국민의 선의를 조롱하고, 문민정부가 역사앞에 져야할 책무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점심마다 칼국수를 먹어 온 아버지를 「만화」로 만들고, 한국정치를 세계의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김현철씨가 구속되던 17일 발표된 청와대 논평은 사태를 바로 보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법처리는 지난 2월 대통령의 담화에서 「대통령의 자식이라도 책임질 일이 있다면 당연히 사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힌 대국민 약속에 따른 것』이라는 것이 논평 요지인데, 그의 구속은 여론의 압력에 끌려간 것이지 대통령의 약속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민의에 굴복한 6·29선언이 전두환씨의 결단이냐 노태우씨의 결단이냐를 따지는 것 만큼이나 공허한 소리다.
우리는 이제 겨우 「소산」을 넘고 있다. 『대통령 아들이 소통령 노릇을 한다. 거산(대통령의 아호)이 소산(김현철씨의 별명)을 못이긴다』는 무성한 소문이 나돈지 사오년만에, 한보사태가 터지고 김현철씨를 수사하라는 여론이 빗발친지 4개월만에, 대통령의 아들은 드디어 법앞에 평등한 만인중의 하나가 됐다. 개혁의 불을 댕겼으나 개혁을 감당할 힘이 없었던 대통령, 국민의 수준과 시대정신을 따라가지 못했던 대통령의 등을 떼밀며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그러는 사이 해가 저물어 이 정권은 7개월을 남겨놓고 있다.
김현철 구속이후의 해법은 개인의 성향에 따라,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사태의 본질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아들을 감옥에 보낸 대통령의 아픔이 크다한들 군사정권의 탄압아래 아들의 목숨을 뺏겼던 수많은 부모들의 슬픔에 비하겠는가. 국민을 우롱한 죄가 독재의 죄에 비해 가볍다 할 것인가. 전직대통령을 두사람이나 감옥에 가둔 대통령의 아들이 그들과 유사한 죄로 감옥에 가게 된 이 세계적인 스캔들을 어떻게 임시로 봉합하겠다는 것인가. 전직 대통령이 불려다니는 끔찍한 모습을 다음 정권에서 또 보라는 것인가.
김영삼 대통령의 나라사랑하는 마음과 고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가 이 시대의 정신과 이 사태의 본질을 심각하게 의식하고 있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편집위원·도쿄(동경)에서>편집위원·도쿄(동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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