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부터 16일까지 국립국악원에서 닷새 동안 계속된 「97 가야금 역사 축제」는 현대 가야금작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해 왔는가를 일괄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뜻깊은 기획이었다. 60년대를 시작으로 10년 단위로 각 시기의 대표작 여섯 편씩을 연주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나흘에 걸친 연주회에서는 황병기와 이성천의 작품이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이는 현대 가야금음악에 끼친 두 작곡가의 영향이나 공로를 새삼 말해주는 것이었으나 그 한편으로는 이젠 새로운 세대의 신경향의 작품이 등장해야 함을 역설해주는 것이기도 했다.이번 가야금 역사 축제의 가장 큰 관심거리는 역시 마지막날의 「새로운 음향의 가야금합주곡」일 것이다. 그동안 현대 가야금음악이 독주곡 위주로 발전해온 데 비추어 가야금만의 합주는 새로운 가야금음악 만들기의 돌파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초연된 곡 가운데 최재륜과 황의종의 곡은 그동안 한 세대가 구축해놓은 작품경향이나 연주기법을 두루 잘 활용한 가작임에는 틀림없으나 「새로운 음향」에 대한 욕구는 그다지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특별히 주목한 작품은 전순희의 가야금합주곡 「봄」이다. 서양 현대음악의 작곡기법이나 음 진행에 기본을 두었지만 이것을 가야금이라는 악기의 음색 속에 어떻게 전개해내야 하는지에 대해, 이 작곡가만의 매력적인 방법을 읽어낼 수 있었다. 축제의 대미를 장식한 백대웅 작곡 「봄의 리듬」은 작곡가가 8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리듬과 그 효과에 대해 고구했던 노력의 또 하나의 결과물인데, 서울새울가야금삼중주단의 연주를 통해 당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다가왔다. 아울러 이 단체에 의해 시작된 고·중·저음가야금의 삼중주 형태가 이제 실험을 끝내고 정착됐음을 이번 축제를 통해 결론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가야금 역사 축제는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크다. 많은 작품 가운데 「한국」과 「현대」라는 두 명제를 모두 만족시켜주는 어떤 한 작품을 꼽기에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세계 음악시장에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는 가야금작품을 만나려면 더 기다려야 할 지 모르겠다.<윤중강 음악평론가>윤중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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