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대선주자를 용이라고 칭하는 기사제목이 나가면 어김없이 신문사 정치부로 볼멘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온다. 왜 용이라고 합니까. 여당의 대선주자들이 무슨 용입니까, 지렁이도 못되는 사람들을… 딱히 변명 할 말이 없다. 그래서 하루는 제목을 다는 편집자에게 용이라고 하니까 항의가 온다고 은근히 시정을 요청했다. 그런데 편집자의 대답이 그럴싸 했다. 단 한글자로 대선주자를 칭하고, 뜻도 함축적이고 제목달기도 편하기때문이지 별다른 의미는 없다는 것이다.야당은 사실상 경쟁자가 없으니 용앞에 몇마리에 해당하는 숫자를 굳이 달 필요가 없다. 국민회의는 김대중 총재가, 자민련은 김종필 총재가 꽉 잡고있다. 그저 DJ라든가 JP, 또는 두사람을 합해 DJP라고 부르면 된다.
그런데 이쯤에서 살짜기 고백할 것이 있다. 한국일보 정치부에서는 여권 대선주자를 절대 용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끼리 「두발 달린 짐승」이라고 부른다. 특별하게 대선주자를 비하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저 부르는 은어이다. 이들이 정치부 기자들을 귀찮게 하고 괴롭히기 때문이다. 툭하면 강연이다 행사다해서 지방에 가고,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닌다. 그때마다 이들을 따라 다녀야 한다. 출마가 뻔한데도 「아직은」이라는 토를 달고, 선거운동 하면서도 안한다고 하고 다닌다. 그래서 『두발 달린 짐승이 어딘들 못가랴…』라는 말이 나왔고, 그 아름답지 못한 수식어가 은어가 돼 버렸다. 지난 일요일 저녁 이들중 5명이 회동했다. 휴일 저녁 모처럼 집에 일찍 들어가려던 정치부 기자들의 발이 묶였다. 정치부 기자의 입에서 『두발 달린 짐승이 어딘들 못가랴…』라는 말이 새나온 것은 불문가지이다. 임금님도 뒤에서는 욕을 듣는다고 하는데 이 정도야 괜찮지 않을까 싶다.
7명의 대선주자중 누가 후보로 결정되느냐가 관심사로 부상되고 있다. 정치에 혐오감을 가진 사람들도 누가 될것인가에 대해선 관심을 기울인다. 물론 여당의 후보가 결정되면 그때부터는 김대중·김종필 총재, 여당후보중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쏠릴 것이다.
이회창 이수성 이홍구 박찬종 이한동 김덕룡 이인제. 모두들 능력과 자질을 갖췄다고 한다. 정치부 기자들은 그러나 이들중 국가지도자로서의 덕목을 갖춘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 대충 알고있다. 일곱중 두세명, 그중에 한사람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는 있다. 이들뒤에 줄서는 사람들이 많은데 상당수는 헛물을 켤 것이다.
여든 야든 후보 경선방식은 합리적인가. 그렇지 않다. 선출과정에 국민의사는 전혀 투영되지 않는다. 여론의 검증절차는 없으며, 오로지 당내 세력의 많고 적음에 의해, 또는 당략적 방법에 의해서만 후보가 결정된다. 우리의 정치문화가 원숙해 있다면 후보나 대통령이 적당히 뽑혀도 별 탈은 없다. 이런 점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오늘」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도 5년전 지금과 똑같은 방식으로 후보가 됐다. 김대통령이 대통령의 그릇에 합당하냐 아니냐는 훗날 따질 일이지만, 그가 깨끗한 정치를 하려했던 마음가짐을 사람들은 믿고 싶어한다. 사람을 잘 못 쓴 것, 가신과 아들, 그리고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것, 국민이 무조건 따라오리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것 등으로 편치않은 「오늘」을 맞고있다.
신한국당은 후보경선에 민의가 적정수준 반영되는 방법, 대의원을 당리당략에서 자유롭게 할 방법이 없을까 골똘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장 그런 방법이 없다면 대의원을 잘 뽑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대의원들이 세싸움의 전위대로 나선 지구당위원장의 의사, 또는 그들의 합종연횡과 상관없이 대통령후보를 뽑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신한국당의 경우 대의원들이 일곱마리 용중에서 좀 더 덕이 있는 사람, 그룻이 큰 사람, 그리고 위기관리 능력이 있는 사람을 스스럼없이 선택하도록 다시한번 심사숙고 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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