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달’ 맞아 첫 공개/차 달여 마시던 ‘석지조’/중국보다 200년 앞서강릉시 강동면 하시동 공군 부대 영내에 있는 한송정이 차의 달인 5월을 맞아 지난 16일 처음으로 일반에 개방됐다. 명산대천을 순례하던 신라 화랑들이 수련을 하며 차를 마시던 한송정은 차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성지처럼 받들어지는 곳. 또 화랑들이 차를 끓이던 「석지조(돌화덕과 돌연못)」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져 중국과 일본에서도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번은 구경하고 싶어하는 곳이다.
이날 강릉시립박물관(관장 김육기)과 강릉동포다회(회장 고숙정)는 한송정 주변 잔디밭에서 들차회를 열고 한송정 개방을 자축했다. 전국에서 모인 500여명의 차를 아끼는 사람들이 자리를 함께 한 들차회에는 한잔 차와 다식을 앞에 놓고 한송정이 자랑스런 민족문화 유산이자 우리나라 「차의 성지」임을 설명하는 순서도 마련됐다.
경포대와 함께 신라 화랑들의 수련장으로 사용됐던 한송정은 삼국시대 신라 진흥왕 연간(540∼575년)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축조 연대는 알 수 없다.
진흥왕때 건립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는 「사선」으로 일컬어지는 영랑 술랑 남석행 안상 등 네 화랑이 이 무렵에 활동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화랑도가 제 모습을 갖추는데 크게 기여, 결국 훗날 신라가 삼국통일을 할 수 있도록 초석을 놓은 화랑들이다.
한송정과 사선에 관한 글은 고려때 학자 이인로(1152∼1220년)의 파한집」에 남아 있다. 이인로는 파한집에 「까마득 옛적에 사선 노닌 곳/ 푸르른 소나무 우뚝 서 있네/ 차샘속 달만이 그때 그 시절/ 어렴풋 하나마 생각케 하네」라는 시를 남겨 놓았다. 그는 또 「사선이 놀았던 한송정에는 그들을 따르던 3,000여명이 심은 소나무가 지금도 창창하여 마치 구름같다」는 글도 남겨 놓았다.
이날 들차회에서 다시 한번 이야기거리가 됐던 「석지조」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다구. 한송정 석지조가 어떤 모양이었는지는 이제현(1287∼1367)의 「묘련사 석지조기」에 남아 있다. 「후세 사람들이 석지조를 보지 못하게 될까 이 글을 남긴다」고 한 이제현은 석지조에 대해 「………그길로 한송정을 구경하였는데 그 위에 석지조가 있었다. 그 고장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옛 사람들이 차를 달여 마시던 도구로 어느 시대에 만든 것인지는 모른다고 하였다. 두 군데를 오목하게 파놓은 돌덩어리로 둥글게 판 곳은 불을 두는 곳이고 타원형으로 파놓은 곳은 차그릇을 씻는 곳이다. 또 조금 크게 구멍을 내어 둥근 데와 통하도록 해 바람이 들어오게 해두었으니 이름하여 석지조라 했다. 인부 10명으로 하여금 처마 아래에 굴려다 놓고 손님들을 청하여 앉힌 다음 백설처럼 시원한 샘물을 길어다 황금빛 움차를 달였다」고 했다.
중국에도 구리와 쇠로 주조한 「풍로」라는 석지조 비슷한 다구가 있으나 758년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한송정 석지조보다도 200년 가량 늦다.
역시 고려때 사람 이곡(1298∼1351년)도 한송정 석지조에 관한 글을 남겼다. 이곡은 「………한송정에서 송별연을 베풀었다. 이곳 또한 사선이 놀던 곳이었는데 한송정에 유람오는 사람이 끊이지 않자 고을 사람들이 귀찮게 여긴 나머지 정자를 헐어 버렸다. 소나무 또한 불타버리고 오직 돌덩어리 한개에 차를 끓이는 화덕과 차그릇을 씻을 수 있는 곳을 만들어놓은 석지조가 남아 있었는데 이는 사선이 차를 끓여마시던 다구라고 하였다」고 했다.
한송정은 원래 지금 있는 자리에서 조금 올라가 북쪽으로는 경포대, 남쪽으로는 안인이 내려다 보이는 해변가 낮은 동산 꼭대기에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중요한 군사시설물이 있어 지금 자리에 공군측이 약식으로 정자를 만든 것이다.
한송정에 남아있는 연단석구도 화랑들이 차를 끓일때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제현이 보았던 석지조와는 전혀 다르다. 1868∼1870년 강릉부사로 있으면서 한송정을 둘러보았던 윤종의가 신라선인이 이곳에서 노닐었다는 얘기를 듣고 돌에다 글씨를 새겨놓은 것이 석지조로 잘못 알려져 왔던 것이다. 이 연단석구에는 가로 40㎝ 세로 10㎝ 깊이 8㎝의 크기의 홈이 파져있으며 홈 주위에는 「한송정신라선인영랑연단석구」라는 음각글자가 있지만 이 돌은 비석받침일 뿐이라고 강릉시립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정항교(42)씨는 단정하고 있다.
강릉시는 올해안에 석지조를 복원할 계획이다. 군부대에서 약식으로 만든 한송정도 전국 차인들의 노력으로 조만간 제 모습을 갖추게 될 전망이다.
강릉의 차인들은 민족문화유산의 자랑거리인 한송정을 과감하게 개방한데 이어 앞으로 간단한 수속만 밟으면 민간인이 쉽게 출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공군부대 조치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김대성 편집위원>김대성>
◎알기쉬운 차 입문/“차 우려내기는 경험의 미학”
차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직접 구입한 차보다는 선물로 받은 차를 맛보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귀한 차를 선물받은데 대해 감사하면서 차통을 열고 보면 보통은 어리둥절해 한다. 커피처럼 분말이나 열매로 된 것이 아니고, 홍차처럼 티백으로 된 것도 아니라 마른 나뭇잎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일단 낮설기 때문에 다시 넣어 둔다.
기회가 닿으면 차내는 법을 배워보리라. 그러고는 귀한 것이라고 장식장 안에 보관하는 사람들이 태반일 것이다. 조금 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차통에 들어 있는 설명서를 찬찬히 읽어 볼 것이다. 보통 설명서는 2∼3g의 차에 섭씨 70∼80도로 식힌 끓인 물 50㏄를 붓고 1∼2분간 기다려 차가 우러나면 2∼3회에 걸쳐 나누어 마신다고 되어 있다. 이는 3g의 차를 150㏄의 물에 5∼6분간 우려내는 표준차 우리기를 응용한 것이다. 본래 홍차의 등급을 정하기 위해 영국에서 고안해낸 이 차우리기 방법은 오늘날에는 홍차 뿐 아니라 녹차와 오룡차 등의 품질 등급을 정하기 위해서도 쓰인다. 그러나 이 표준차 우리기로 차를 우려내면 우리 입맛에는 조금 진한 차맛이 난다. 그래서 차의 양은 3g에서 2∼3g으로, 우려내는 시간은 5∼6분에서 1∼2분으로, 물의 양은 150㏄에서 50㏄로 줄였다.
처음 우려낸 초탕은 첫우림, 재탕은 두물우림, 삼탕은 끝물우림이라고 하며 우려내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 가는데, 말린 차잎이 다 펴질때까지 마시도록 한다.
우리나라 차는 납작한 잎모양을 한 찐차(흔히 증차라고 함)와 덖음차(부초차라고 함)로 나뉜다. 찐차는 첫우림이 비교적 빠르기 때문에 1분 동안 우려내고, 덖음차는 1분30초 정도 우려낸다. 차를 제대로 우려내려면 3가마니 이상의 차를 우려마셔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오랫동안 많은 차를 대해야만 차를 잘 우려낼 수 있다는 뜻이다. 차는 바로 경험의 미학이다. 먼저 차와 물의 양, 물의 온도와 우려내는 시간을 조절하며 자신의 기호에 맞는 차맛을 찾아야 한다. 어렵게 생각하는 다도도 결국은 맛과 멋을 겸한 한 잔의 차를 우려내기 위한 방법론에서 비롯한다.<박희준 향기를 찾는 사람들 대표>박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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