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룡은 보이지않는 ‘용들의 전쟁’/나라방향 바로잡을 지도자 선택은 국민의 몫나라가 방향을 잃고 있다. 국민은 냉소 허탈 절망 속에 그저 살얼음을 디디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여야 정치인은 대선 열병에 걸려 나라보다는 당, 당보다는 개인의 욕망에 사로잡혀 부질없는 정쟁을 일삼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허리띠를 졸라 매고 억척같이 일하던 산업화시대나 암울한 권위주의 독재에 온몸으로 싸우던 민주화시대의 국민정신이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국민의 에너지를 모아 나라의 방향을 확고히 설정할 수 있는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지만 그러한 지도자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여든 야든 가능한 빨리 대선 후보를 선출하고 국민은 그들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정치의 세계에는 교과서적인 최선은 없다. 여건이 좋을 때도 실제로 차선의 선택이 최선인 경우가 많고 상황이 나쁠땐 최악을 피해 차악을 선택하는 길뿐이다.
우리는 위기를 호기로 전환하고 무엇보다 나라를 지키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한보사태에 관한한 정치인들의 아전인수나 언론의 과장보도도 있지만 대체로 평균적인 국민의 추측대로 대통령 부자가 「몸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듯하다. 국민이 배신감을 느끼고 인기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이렇게까지 되어 버린 책임은 일차적으로 김대통령에게 있다. 과거 정권과의 차별성을 강조하여 흑백 이분법으로 『과거의 정권은 부패했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 김정권의 화두는 분명히 오류였다. 민심은 천심이라지만 한번 돌아서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으며 때로는 변덕스럽기조차 하다. 김정권에 대한 95%의 지지는 언제고, 박정권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또 웬말인가. 박정권의 산업화정책은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그에 가려져 있던 수많은 반인권 사례를 눈감아서는 안되며 김정권의 국정능력을 신뢰하기는 어렵지만 이 정권 하에서 가혹한 고문 얘기를 들은 바 없다. 민주화의 과정에는 「자유로운 혼돈」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지도자가 갈팡질팡할 때일수록 민심은 튼튼한 균형자로서 나라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엄청난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비유컨대 고려말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시기보다 더 큰 변화가 예상된다. 우리는 분단시대에서 통일시대로 이행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해야 한다. 「용들의 전쟁」이 가관이지만 정도전만한 대룡은 보이지 않는다. 자식의 형무소행을 담담하게 볼 수 있는 현직 대통령이라면 대선자금 문제도 국민 앞에 솔직하게 설명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현명한 국민이라면 헌정 중단을 막는 관용을 보여야 하며 여야의 당리당략의 함정에 말려 들어서도 안된다.
권력구조의 문제만 해도 그렇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이 대선공약으로 내각제를 내놓고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은 나무랄 것이 없으나 대통령이 되기 위한 전술적 야합이나 정국 돌파를 위한 방법으로 국민투표에 묻는 등의 방법은 국력낭비다. 여야 정당은 현행법 하에서 12월 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것이 순리이며 하루 빨리 고비용 정치구조의 개혁에 합의해야 한다. 그리고 대선주자들은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면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는 꼼수를 부리며 경쟁자들을 헐뜯는 사람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그가 무엇을 어떻게 해왔는가를 보고, 그의 업적에서 나타난 능력과 자질이 미래의 정치구상에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를 판단하면 된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대통령이 되기 전에 그가 가졌던 식견이나 교양이 재임기간을 지배한다고 한다. 나라가 망하는 원인은 대체로 국민이 아니라 지도자에게 있다. 그 지도자의 선택은 바로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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