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씨의 구속은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우리 헌정사상 전직 대통령 단죄는 있었지만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국정과 민심을 어지럽혔던 현직 대통령 아들이 구속된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구속에 이른 과정 또한 짙은 감회를 불러 일으킨다. 집권정치세력은 물론 본인의 저항과 온갖 우여곡절에도 국민의 힘으로 기어코 사법처리를 성사시킨 의미를 과소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5·6공의 분명한 단죄에 이어 「문민정부」의 숨겨졌던 치부와 비도덕성을 이 정도라도 캐냄으로써 우리의 민주주의와 법치원칙은 또 다시 확실하게 성장할 수 있는 전기를 맞았다.
이런 정치·사법적 의미를 떠나서도 장장 4개월의 「한보」악몽과 사슬에서 하나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게 한 점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보」의 그늘 아래서 팽개쳐졌다 싶었던 나라살림과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에 힘을 모아야겠다는 공감이 확산되어 온 시점인 것이다.
하지만 현철씨에 대한 검찰수사와 구속사유가 이번 구속이 지닌 의미와 상징성에 걸맞을 정도인가를 생각하면 실망과 서글픔을 금할 수가 없다.
17일 하오 검찰이 밝힌 현철씨 혐의는 불행히도 그 동안의 축소수사 걱정을 사실로 확인시켜 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장의 요지는 그가 고교동문실업인 등으로부터 대가성이 인정되는 32억2,000만원을 받음으로써 특가법상의 알선수재혐의를 걸었고, 대가성을 밝혀내지 못한 33억3,000만원의 증여금액에 대해서도 13억5,000만원의 조세포탈혐의를 함께 물은 것뿐이다.
검찰이 그동안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됐던 「떡값」이나 활동비에 대해 조세포탈혐의로 처벌한다는 대원칙을 세운 것은 「떡값」관행에 처음으로 사법적 쐐기를 박는 것이어서 그 의미와 파급효과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겠다. 특가법상의 조세포탈죄가 적용되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중벌과 함께 2∼5배까지의 세액추징이 가능하다. 이런 원칙이 재판과정에서 확정될 경우 정치권의 떡값 수수나 비자금 처벌에 전기가 마련될 수 있겠다.
그보다 근원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앞서 여러 차례 지적해왔듯 한보사건의 핵심이라 할 5조원에 이른 부정대출 외압의 몸체규명과 단죄가 그만 실종해 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소통령」 또는 「소산」으로 불리며 총체적으로 국정을 농단하고 온갖 이권에 개입해 온 현철씨야말로 진짜 「몸체」이거나 그 직접적인 연결고리라는 의혹 때문에 검찰수사도, 국회청문회도 있었던 것인데 한보관련 부분이 눈을 씻고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현철씨가 김기섭씨나 이성호씨를 통해 관리해 온 100억원 이상의 거액이 92년의 대선자금잔액으로 의심될 뿐더러 실명제법을 위반해 가며 숨겨 관리해 온 것이 이미 드러난 바 있는데도 검찰이 그 문제를 왜 비켜갔는지 궁금하다. 그 뿐 아니라 총체척 국정농단이나 안기부사설정보 커넥션 운용으로 인한 심각한 국정문란 혐의는 또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여기서 분명히 지적해 둘 것은 현철씨 구속이 온갖 의혹에 대한 본격수사의 시작일 뿐이지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검찰은 지금부터라도 빠져 있는 여러 근원적 혐의점들에 대해 보강수사를 계속, 확실히 단죄할 책임이 있다. 그렇지 못할 때 이번 사법처리의 역사적 의미는 물론이고 새로운 국정전개의 기운마저 훼손당할 수가 있다. 통치권과 검찰은 거듭 큰 뜻을 잊지 말고 자중자애하길 바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