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시인으로 유명한 한 무기수의 「옥중 에세이집」이 나온다는 소식을 전하는 기사(한국일보 17일자 21면)에 인상적인 시구 하나가 인용돼 있는데, 그 글의 제목이 「인간의 기본」이라고 한다. 내용도 그렇지만 제목이 더 생각을 잡아당긴다.「지금 나에게 가장 절실한 거?
끝도 없이 걷고 싶은 거
걷다가 쓰러져 영영 잠들지라도
마냥 걷고만 싶은 거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한 밥상에 둘러 앉아
오순도순 얘기하며 밥먹는 거…」
걷고 싶은 것은 「자유」다. 사람들과 함께 한 밥상에 둘러앉아 밥먹는 것은 「평화」다. 이러한 자유와 평화가, 7년째 복역중인 유폐된 시인에게 절절한 소망인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와 평화는 실은 「인간의 기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시인은 이 기본을 빼앗긴 슬픔을 조용히 얘기하고 있다.
생각해 볼 일은 「기본」이다.
한 무기수가 목말라하는 자유와 평화 외에도 무수한 「인간의 기본」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틀을 이룬다. 도덕이며 법 같은 것들이 그중의 하나다. 그것들을 지키고 가꾸고 존중하는 것이 우리가 세워나가는 민주주의이고, 그 소박한 약속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 기본으로 부터의 전면적인 일탈이다. 기본을 무시하고, 외면하고, 지키지 않는 것이다.
「정권만 잡으면 된다」고 하는 목적지상주의적 정치행태가 우리 사회에서 기본일탈의 대표적인 전형이다. 절차나 과정은 어찌됐든, 명분이나 이념조차도 불문하고, 정권 잡는 것만이 지상의 목표인 「쿠데타적 사고」가 횡행하는 정치행태를 우리는 오랫동안 보아왔고, 지금도 보고 있다.
다수결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고, 결정을 얻어내는 과정과 절차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이 민주주의라는 「기본」을 우리는 지난 연말의 날치기파동에서 비싸게 학습했었다. 그로부터 5개월간 나라 전체를 바닥모를 수렁에 빠뜨린 한보사태―대통령 차남의 비리―대선자금 의혹의 증폭 등, 이 모든 역사의 소용돌이 역시 법치주의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이 외면된 데서 비롯된 상징적인 일임을 깨닫고 있다. 「기본」은 다른 말로 하면 제자리 찾기다.
마침내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구속됨으로써 한해의 절반 가까이를 소용돌이속에 몰아넣은 국난의 위기국면은 제자리 찾기의 단초를 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구속이 하나의 단초일 뿐이지, 한보사태나 대선자금의 의혹을 덮을 수 있는 결말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검찰은 이제야 비로소 「기본」으로 돌아가는 첫 기회를 잡은 셈이다. 법치이념을 구현하는 것이 검찰이 추구하는 「기본」이어야 한다.
한국이 대통령 차남의 일로 수렁을 허우적거릴 때 「노제국」 영국에서는 정권교체와 함께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43세 총리가 신선한 화제를 불러 모았다.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한 전송사진 한장은 새 총리의 어린 자녀 둘이서 이삿짐을 앞뒤에서 들고 나르는 장면. 달리 이상하다거나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너무나 평범하고 어린이다운 그 모습에서 그 나라의 「기본」이 보였다.
도대체 우리 대통령의 아들은 그 많은 돈을 무엇을 위해 마구 주고 받았다는 것인가. 그 돈은 누구의 돈인가. 이런 모습 보자고 우리는 17년전 5월에 광주에서 피흘리고, 10년전 6월에 거리로 나섰으며, 그 힘들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문민정부를 탄생시켰던 것인가.
사실은 누구랄 것이 없다. 우리 모두는 총리집 이삿짐을 나르는 어린 자녀처럼 가난하고 단순해져야 한다. 영국이나 아일랜드 보다 임금이 높은 것을 자랑하고 OECD 가입을 으스대던 어리석음에서 깨어나야 한다. 곰발바닥을 찾다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된 졸부근성을 통회하지 않고는 나라를 다시 추스릴 방법이 없다. 이제는 고실업 저성장시대에 견디어야 한다. 진정으로 가난해져야 한다. 「인간의 기본」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깨닫고 있는 오늘의 교훈이다.<정달영 본사 심의실장>정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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