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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에게(김성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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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에게(김성우 에세이)

입력
1997.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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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선생님이 맨 앞장 서 주셔야 하겠습니다. 선생님이 맨 먼저 시작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선생님 말고는 아무도 전위로 세울 사람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맨 앞에 나서지 않으면 이 자칫 주저앉고 말 나라를 일으킬 길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깃발입니다.

이 나라가 선생님에게 달렸습니다. 지도자나 정치가를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디에도 믿을 만한 권위가 없습니다. 선생님이 마지막 믿음입니다. 선생님이 지도자입니다.

청정한국을 건설하겠다는 건국이래의 염원은 남북통일만큼이나 해묵은 숙원인데, 절망하고 있던 통일은 차라리 안개가 걷혀가는 듯하지만 부정부패의 척결은 도리어 갈수록 먹구름이니 이 무슨 캄캄한 나라입니까. 반세기도 모자란다면 언제까지 이렇게 불결한 나라이겠다는 것입니까.

스승의 직분에 대해서는 고전적 명문인 한퇴지의 「사설」을 익히 알고 계시겠지요. 이 글은 모든 스승의 교본일 것입니다. 여기서 스승이란 도를 전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스승은 도 바로 그것이요 도가 있는 곳이 스승이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저 아이의 스승은 글을 가르치되 그 구두(구독)를 익혀 줄 뿐 내가 말하는 바 그 도를 전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식만 전수하는 스승을 비판했습니다.

사도란 말을 씁니다마는 스승의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곧 길입니다. 도를 전하는 길은 도를 가르치기만 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도덕성 회복을 위해서는 학교에서의 인성교육이 시급하다는 말이 유행가처럼 되풀이 되풀이 고창되어 왔습니다. 좋은 정치가 민심을 얻는다 해도 좋은 교육이 민심을 얻는 것에는 못미친다는 옛말도 있습니다. 하물며 정치를 잃어버린 우리나라에서야 오죽이겠습니까. 그러나 이 교육에 앞서 꼭 정화되어야할 것이 있습니다. 이 정화 없이는 어떤 교육도 실효를 거두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촌지라는 이름의 학교 부조리입니다.

교육부나 시·도 교육위원회는 학교의 촌지를 엄벌하겠다고 「스승의 날」이 돌아올 때마다 경고하지만 교육 현장이 크게 달라진 흔적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를 맥빠지게 합니다. 학교를 믿을 수 없다면 사회의 어느 구석에 기대를 걸겠습니까.

한보나 김현철 비리의 더러운 손들은 따지고 보면 학교에서 돈봉투를 주고받는 손들이 길러낸 것입니다. 교실에서 돈봉투를 주고받는 손의 손가락으로 사회의 어느 추잡한 손도 손가락질할 수 없습니다. 성당에서의 살인이 더 하느님에 불경이듯이 학교에서의 부정이 더 부정합니다. 학교에서 돈봉투를 보고 배운 학생이 사회에 나와서 돈봉투를 모른다면 학교를 헛다닌 것이 됩니다.

학교 촌지가 근절되지 않는 것이 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학부모들의 이기심 탓도 있다고 하지만, 선생님들이 유교무류(가르치되 분류하지 않음)한다면 어찌 선생님들을 불신하겠습니까. 그리고 전혀 촌지가 없는 학교도 분명히 있습니다. 결국은 선생님들에게 달린 것입니다. 회개한 도박꾼이 자기 손목을 절단하는 것과 같은 결연한 각오로 선생님들은 제발 자기 손을 깨끗이 씻어주십시오.

나라를 이만큼 키운 원동력이 부모들의 극성스러운 교육열과 이를 뒷받침한 선생님들의 정성스러운 노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서 이제 선생님들이 그 부모와 합작하여 나라를 망가뜨릴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실의 청결없이 나라의 청결은 없습니다. 모든 교육개혁은 물론 어떤 사회개혁도 그야말로 조그만 촌지의 개혁에서부터 시작하는 수 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맨 앞장을 서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운명이 선생님의 손끝 하나에 달렸습니다. 전국의 840만 초·중·고교 학생들을 움직이는 34만 교사들의 힘은 곧 나라를 움직이는 힘입니다.

교육주간이 아니더라도 어찌 선생님의 수고와 은혜를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선생님, 선생님에게는 선생님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이 이름이 그 노고를 다 보상해 줄 것입니다.<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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