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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7.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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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문열의 새 소설 「선택」처럼 발간되기 전부터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책도 드물다. 이 책은 발간된지 한달반만에 11만부나 팔렸지만 작가와 여성 페미니스트 간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주인공은 작가의 조상이기도 한 조선 숙종 때의 실존인물 정부인 장씨. 소설은 작가 특유의 고전적이고 장중한 문체로 신사임당과 비견될 만한 현모양처상을 부활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학문과 예술에서 비범했던 주인공은 「부녀의 길에서 가장 큰 어머니의 길」을 선택하고 후회없는, 아니 긍지에 찬 삶을 살아간다. ◆이 소설은 장구한 역사 위에서 볼 때 살림하고 아이 기르는 평범한 주부들의 자기희생적인 삶 역시 다른 가치와 바꿀 수 없는, 의미 있는 삶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의 관점은 다르다. 작품에서 무자비하게 선제공격을 당한 여성작가들은 이 작품을 남성우월주의의 극치라고 맹렬한 반격을 가했으며, 주인공을 매춘여성처럼 비하하기도 했다. ◆소설에서도 주인공의 성공한 아들들에 관한 묘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비해 두 딸에 관한 진술은 거의 없다. 여성은 가족사에서도 부재자처럼 처리되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여성사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사후에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은 허망한 일일지라도, 여성이기 때문에 잊혀지는 것 또한 쓸쓸하고 부당한 일이다. ◆유림 일각에서는 『매춘여성』 운운한 여성을 고발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문학적 논쟁을 장외로까지 연장시키는 것은 온당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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