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재소환돼 사법처리 받기에 이른 것은 이미 예상되어 온 일이라 해도 그 의미가 심장하다.크게 보면 통치권 주변의 정경유착비리로 전직 두 대통령이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데 이어 현직 대통령의 아들마저 사법처리된다는 것은 결코 예삿일이 아니다. 더 이상 정치부패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국민적 합의와 시대정신의 반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한보사태의 비리규모와 지지부진했던 수사에 분노하면서도 절망을 거둘 수 있는 것은 그같은 사필귀정에 대한 믿음 때문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따져봐도 한보수사착수 109일만에, 첫 소환 84일만에 재소환됨으로써 드디어 사건수습의 고비를 넘기게 된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한보 여파로 국정은 물론이고 나라 경제가 넉달이나 표류한 나머지 하루 빨리 그 멍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공감이 형성되고 있는 시점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현철씨에 대한 사법처리는 난마처럼 얽혀 온 온갖 의혹을 속시원히 풀어줄 수 있을 정도로 단호해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렇지 않고 정치권 눈치보기로 말미암아 의혹의 여지를 남겨둔채 성급히 덮어 버리려 해서는 시대정신을 살리기는 커녕 현실적 뒷마무리조차 될 수 없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걱정스러운 것은 벌써부터 정치권은 물론이고 검찰주변에서 축소수사 및 성급한 마무리 기미가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로 꼽을 수 있는 게 핵심의혹이라 할 한보부정대출외압의 몸체가 흐지부지되고 있을 뿐 아니라 현철씨나 청와대와의 연결고리가 규명되지 못해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점이다.
두번째로 현철씨 비리중 국민들에게 가장 충격을 안겨준 게 대선자금의 불법적 은닉과 차명관리를 통해 드러난 과거와 다름없는 정권적 차원의 비도덕성 노출이었다. 그 다음으로 꼽히는 게 대통령 아들의 총체적 국정개입이었다.
그런데 벌써부터 들리는 바로는 대선자금문제는 검찰의 수사본류가 될 수 없는데다 확인이 어렵다는 것이고, 총체적 국정개입 혐의도 민간인 신분이어서 사법처리하기 어렵다는 것이 아닌가. 김기섭씨를 통한 사설정보채널 운용혐의 등 뚜렷한 월권, 불법도 안기부와의 불편한 관계를 고려해 비켜가리라는 예단이고 보면 뭣이 남는다는 것인가.
결국은 각종 비리개입으로 인한 특가법상의 알선수재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인데 그 혐의에도 대가성입증문제라는 또 다른 피난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태중씨의 구속이나 이성호씨의 귀국증언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드러나고 있다는게 4∼5개 업체로부터 20여억원정도의 대가성이 의심 가는 이권을 챙겼다는 혐의이다. 그 정도 혐의만으로 사법처리해 한보문제나 현철씨문제가 산뜻하게 마무리될 수 있겠는가.
검찰이 비장의 카드를 숨겨뒀다는 소리도 들리기에 일단은 지켜봐야겠다. 분명한 것은 단호한 사법처리만이 한보악몽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이다. 통치권과 검찰의 책임이 무겁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