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에서 터득한 극사실주의기법의 환상멀리서 보면 한 폭의 설경 산수화, 가까이 다가가면 눈 위에 남겨진 포크레인 바퀴자국. 6월2일까지 갤러리 상(02―730―0030)에서 열리고 있는 이상원(62)씨의 5번째 개인전 「시간과 공간」은 길 위에 남겨진 자동차 바퀴자국이 소재다.
길 위에 패인 바퀴자국에서 삶의 진실을 읽어내는 통찰력은 남다른 이력에서 기인한다. 이씨는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다. 한국전쟁 중 용산 미군 군매점(PX)에서 초상화를 그리며 화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초상화를 비롯해 남산공원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전시돼 있는 「안중근 의사 영정」이 대표작이다. 초상화가로서 성공했지만 정식 화가에 대한 미련이 많았다. 75년, 나이 사십에 국전에 입선하며 이씨는 화단에 이름을 올렸다. 입선에 그쳤지만 언론과 평론가들로부터 대상보다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이씨는 한국화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극사실주의적 기법을 구사한다. 초상화를 그리며 터득한 섬세한 묘사력이 뒷받침된 것이다. 배접한 장지에 오일과 먹을 섞어 그리는 독특한 표현법도 사실감을 높이는 데 한 몫한다.
자동차 바퀴자국, 마대, 가마니, 폐타이어 등 이씨는 남들이 외면하는 쓸모없는 것, 버려진 것에 주목한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에 눈길이 가는 건 그것이 내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 늦깎이 화가는 내년쯤 「자동차 바퀴자국」 연작 2부를 발표할 계획. 『눈도 침침해지고 기력도 예전 같지 않지만 작업실에만 들어서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는 그가 마지막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작업은 인물화. 제대로 한 번 그리고 싶다. 시작은 늦었지만 열정은 때가 따로 없는 것이다.<김미경 기자>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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