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 성심다해 걱정안돼요”/책임감 남달라 가장으론 높은 점수/칼국수·된장찌개 등 요리도 잘하죠/유치원·초등교 동기 서로 너무 잘알아/총리직·정계입문 굉장히 반대했는데…―가장으로서, 또 남편으로서 이고문께 점수를 매긴다면 각각 몇점입니까.
『아버지가 안계신 집안의 8남매 장남인데다 타고난 성정 때문에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남다릅니다. 가정에 대한 책임을 온통 다 져야 스스로 마음을 놓습니다. 가장으로서 점수는 그래서 높게 줍니다. 남편으로서 점수는 매기기 어렵습니다. 보수적이고 완고한 성격인데, 어느듯 익숙해져서 저 자신 완전히 남편에게 의지하고 삽니다』
―남편이 가장 미웠던 때는 언제입니까.
『많았던 것 같은데, 다 잊어버렸나 봐요. 이렇게 말하면 젊은 부인들에게 욕먹겠지만, 뭐든지 못하게 하는 게 많았어요. 친구들이 혼자서 집에 놀러오면 애들 어디두고 왔냐고 막 혼을 내요. 올려면 애들과 함께 오라는 거죠』
―가장 사랑스러웠다거나 좋았던 때는 언제입니까.
『사랑스럽긴요.(웃음) 가족에 대한 생각이 끔찍합니다』
―이고문과는 언제, 어떻게 만났습니까.
『남편과는 혜화유치원, 혜화국민학교 동기동창입니다. 혜화유치원은 장면 박사가 당시 원장이었습니다. 저학년 시절은 너무 어려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3학년인가 이후로는 기억이 나는데, 남편은 남자반 반장을, 저는 여자반 반장을 했습니다. 그때는 남녀가 워낙 유별했고, 눈맞출만큼 조숙하지도 못했습니다. 너무 잘 알다보니 어떻게 결혼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먼저 결혼하자고는 하지 않았습니다.(웃음)』
―직장은 갖지 않았습니까.
『대학 졸업하고 지금은 없어진 한국연구원이란 곳에 연구원으로 취직했더랬습니다. 결혼하고도 다녔는데, 큰 애 낳고 난 뒤 그만두었습니다. 당시는 애 생기면 모두 그만뒀죠. 남편이 애 두고 직장 나가는 것 싫어하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생각이 많이 바뀌어서 딸, 며느리, 제자부인들에게 사회생활 열심히 하라고 말하더군요』
―이고문의 총리직수락은 물론 정치권 입문도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총리직 수락할 때 굉장히 반대했습니다. 서울대 총장으로 뽑혔는데, 4년간 임기는 채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총리직 제의를 그냥 해보는 것이려니 생각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맡았는데, 속상했습니다. 능력있는 많은 분들이 제대로 뜻을 펴보지 못한채 물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생각했습니다. 서울대 총장직을 버리고 갈만한 자리라고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정치입문도 말렸습니다. 정치에 대한 선입견이 워낙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반대하면 뭐하나요.(웃음)』
―이고문이 대선후보가 돼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보는 남편과 남들이 보는 남편이 다를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남편이 뭘 할 때 걱정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특별한 데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점에서 전 남편에게 꼼짝 못합니다.(웃음) 무슨 일에건 성심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귀찮거나 번거로운 일이라 해서 적당히 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많은 사람들이 남편을 믿고 따르는 것은 그 때문일겁니다』
―이고문이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정말로 전혀 모르겠습니다. 우리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대선주자 부인들중에는 유독 경기여고 출신이 많습니다. 묘한 라이벌 의식이 있을법 한데요.
『그동안 경쟁하며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경기여고 44회 동창생중에는 저 말고도 이회창 대표부인과 고건 총리부인이 있습니다. 그 바람에 동창사회에서 44회가 유명해졌습니다. 지난달 14일 140여명이 모여 동창회를 했는데, 서로 축하해주었습니다. 젊었으면 시샘이 있을 수 있었겠지만 환갑된 나이에 그런 것 없습니다』
―이고문이 할줄 아는 요리는 있습니까.
『요리 잘해요. 칼국수, 된장찌개, 멸치볶음을 특히 잘합니다. 대학교에 있을 때만 해도 종종 요릴했는데, 요즘은 통 못해요』
◎이렇게 내조한다/“아직도 낯설고 무서운 정치,마음 편하게 해드려요”
이수성 고문의 부인 김경순씨는 「정치는 무서운 것」이란 생각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고문의 정치권 입문후 그는 여지껏 접해보지 못했던 곤혹스러움에 젖을 때가 많다.
무엇보다 남앞에 모든 것이 노출돼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개인이 아닌 공인으로서 생활해야 하는 일도 그러하지만, 장점이 왜곡되고 참 모습이 잘못 알려지고 터무니 없이 상처입는 일이 비일비재한 정치는 여전히 그에게는 낯선 세계다.
그는 남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한다. 이고문이 서울대총장으로 재직하던 때부터 정치인의 아내가 된 지금까지 그는 수많은 인터뷰요청을 모두 사양해 왔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고문 역시 아내가 「나대는 것」을 꺼려한다는 사실이다. 그점에서 그는 「소리없는」 내조를 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가 가장 안타까워 하는 것은 요즘들어 그많은 사람들을 제대로 대접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은 어떤 경우든 소홀히 대해선 안된다고 어릴때부터 배워오기도 했지만, 사람끓기로 말한다면 누대에 이어진 전통이 되다시피한 이고문 집안에서 그는 스스로 사람대접하기를 즐겼다.
그런 그가 이고문의 정치권 입문후에는 사람대접은 커녕 걸려오는 전화받기에도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어서 마음 한켠이 늘 편치 않다. 그는 남편을 믿는다. 일처리를 믿고, 인간관계를 믿는다. 친구들은 가부장적 남편에 기대 사는 그를 두고 「세상을 너무 모른다」고도 하지만, 그로선 34년간의 익숙함과 편안함을 깰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다. 그저 마음 편하게 해주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내조라고 그는 생각한다는 것이다.<홍희곤 기자>홍희곤>
□약력
◇출생:1937년 4월23일 중국 만주(원적 함북 경성), 60세
◇학력:서울 혜화초등학교―경기여중―경기여고―이화여대 영문과
◇주요경력:특별한 사회활동을 하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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