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꿋꿋한 ‘학자의 길’속에 참스승 모습이/신승하(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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꿋꿋한 ‘학자의 길’속에 참스승 모습이/신승하(아침을 열며)

입력
1997.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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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가 변하다보니 스승이란 말도 그 본래의 뜻을 잃어가고 있다. 학교 이외에 배우는 곳이 너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는 스승이란 말 앞에 참스승이란 「참」자를 더해야 존경하는 스승으로 여겨질 모양이다.필자에게는 대학에 입학하여 역사를 공부하고 다시 대학에서 가르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스승님이 계시다. 지금도 가르침을 주셔 은혜를 입고있어 스승의 날이 남다르다. 그 가운데 한 분은 바로 필자의 전공을 지도해 주신 분으로 총장까지 역임하신 김준엽 교수님이다.

솔직히 대학때에는 강의시간에나 만나뵐 수 있었다. 강의내용의 일부가 「장정(광복군시절)」이란 책으로 출간되었지만 선생님의 전공이 현대사라 대부분이 겪어오신 이야기여서 더욱 생동감있고 흥미로웠다. 이를 통해 선생님께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셨던 이야기도 들었다. 또한 직접 문헌과 비교해 검증할 수 있었기에 선생님께는 자연 머리가 숙여질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자료도 없었던 시절에 소개해주신 외국의 견문과 연구경향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 주었으며 늘 하시는 말씀은 외국사를 공부하려면 반드시 그 나라의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역사란 학문이 문헌을 통해 연구하는 것이기에 읽을 줄 알면 되었지 하는 생각이 보통이었는데 선생님은 늘 이를 강조하시면서 어려운 시절에 많은 제자들이 유학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셨다.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부터 선생님과 좀더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흐트러짐이 없으신 모습과 규칙적인 생활. 때로는 심한 질책을 해주시는 편이 오히려 편하련만 화를 내지 않으시니 더욱 어려워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갖고 생활하시는 것을 보면 대단하신 분이란 것을 새삼 느낀다. 중국을 너무 잘 아셔서 혹시 단련하는 비결을 갖고 계신가 물었더니 새벽 4시면 일어나 책을 보거나 집필하는 규칙적인 생활뿐이라는 것이다.

스승의 회갑때면 기념논문집을 만들어 올리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관례였다. 그런데 선생님과 교류하시는 분이 국내외로 많고 그 분들의 옥고를 받아야했기에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선생님은 완강하게 사양하셨다. 차라리 비밀로 했더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나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제자가 스승을 설득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겨우 선생님의 양보를 얻어냈는데 그나마 사모님의 나이로 하시자는 것이었다.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함께 하며 쌓은 두분의 동지적 사랑이 어떻다는 것은 다 알려져 있었지만 그 의미를 되새김해 보았다. 두분이 두살차이라 2년후로 정했는데 그때는 총장이 되신 다음이었다. 출판기념회의 규모를 어떻게 해야할 지 또 고민이 되었다. 시쳇말로 한판 벌려 자기 선전의 장으로 삼는 이도 많았지만 선생님은 남다르셨다. 간소하게 구내 교수식당에서 하시자는 것이었다. 검소함도 그렇지만 자신을 드러내놓기를 피하고 제자들이 일을 맡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제자가 스승을 존경하는 것은 학덕을 입었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게 스승의 사랑을 받고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생님은 학자를 키우는데 20년이 걸린다고 하면서 그 긴 시간을 보살펴 주시고 있다. 배울 때만의 스승이 아니라 평생 스승임을 증명해 주셨다. 지금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점을 일깨워 주면서 제자의 제자를 챙기고 걱정해 주신다.

자랑스러운 스승임을 더욱 분명하게 하신 것은 정계나 관계의 유혹에도 불구, 끝까지 행단 지켜주신 일이다. 그럴듯한 이유를 달고 현실에 참여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적지않다. 어찌보면 그 분들은 학자라는 것을 정·관계진출을 위한 발판으로 삼은 셈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끝까지 그 높은 자리도 연연하지 않고 학자의 길을 지켜주셨기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고 존경심이 더욱 깊어질 뿐이다. 문자 그대로 사표이시고 참스승이시기에 오늘을 맞아 선생님을 더욱 생각하게 된다.<고려대 교수·중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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