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저기 태극기가 보인다”/북 보트피플 귀순­계획에서 성공까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저기 태극기가 보인다”/북 보트피플 귀순­계획에서 성공까지

입력
1997.05.14 00:00
0 0

◎북경서 동생 접촉 돈받아 식량 등 구입/신의주 출발… 철산 합류… “가자 남으로”/갑작스런 폭풍우에 배침수 시작 사투/마침내 남군함 시야에… “살았다” 환호/바다도 숨죽인 생사 77시간… 노모 업고 “자유의 대단원”안선국(47)씨와 김원형(57)씨 가족 14명의 목숨건 탈출은 장장 77시간여에 걸친 숨막히는 드라마였다. 이들의 진술을 토대로 탈출준비에서부터 귀순까지의 경로를 재구성한다.

▷탈출계획◁

평북 신의주에서 10여년간을 이웃에서 살아온 안씨와 김씨는 같은 외화벌이 지도원. 직업상 다른 사람처럼 밥을 굶지는 않았지만 국경을 비교적 자유롭게 넘나들어 바깥세상에 밝은 탓에 남한사회에 대한 동경은 누구보다 컸다. 이심전심으로 탈출에 뜻을 모은 이들은 곧 치밀한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김씨는 91년부터 교류해온 재미동포 쌍둥이 동생 김인형(뉴욕 거주)씨에게 연락, 지난 3월12일 안씨와 함께 중국 베이징(북경)으로 가 만났다. 이자리에서 인형씨에게 『남한으로 가고 싶으니 도와달라』며 처음으로 귀순의사를 드러냈다. 지난달 10일 김씨와 안씨는 중국에 간 길에 다시 미국에 전화해 4월말 베이징에 온 인형씨로부터 선박 구입 등 탈출자금으로 2만달러를 받았다.

▷탈출준비◁

김씨는 우선 지난 3일 신의주와 인접한 중국 단동시로 건너가 안씨가 주선한 조선족으로부터 5천5백달러를 주고 32톤급 목선 「요동어 3043호」를 구입했다. 이들은 이튿날 이 배를 북한해군 1669군부대에 외화벌이용 선박으로 등록시키고 5월말까지 기한의 출항명령서를 비롯, 운항증명서, 선원증, 바다출입증 등 탈출에 필요한 일체의 서류를 발급받았다.

또 이날 신의주 장마당 등지에서 옷가지와 쌀 2백㎏, 옥수수 5백10㎏을 구입, 집에 있던 쌀 70㎏과 함께 배에 실었다. 이 많은 양을 선적한 것은 만일 항해시 북한함정에 발각될 경우 『외화벌이 일꾼인데 수산물과 교환하기 위한 것』이라고 속이기 위한 것이었다. 또 이에 앞서 단동에서 1천달러에 구입한 휴대폰과 인형씨로부터 받아 보관하고 있던 의약품, 단동에서 구한 라면, 국수 등 비상식량도 배에 실었다. 특히 김씨는 손자 남수(2)군이 급박한 상황에서 보챌 경우 수면제를 주사하기 위해 1회용 주사기까지 준비했다. 대충 준비를 끝낸 안씨와 김씨는 가급적 빨리 탈출해야 한다고 판단, D데이를 9일로 바짝 당겨 잡았다.

▷출항◁

드디어 출발 당일. 안씨와 김씨는 두가족이 한꺼번에 승선해 움직일 경우 의심을 살 우려가 있어 안씨의 고향으로 부둣가에 아는 사람이 많고 경비가 허술한 철산군 동천리 수산기지를 출발지로 정했다. 이에 따라 안씨는 먼저 이날 상오 11시30분께 김씨의 아들 2명만을 배에 태워 연안을 따라 약속장소까지 항해, 정박한 뒤 나머지 가족들을 기다렸다. 김씨는 이튿날 저녁 평북도 안전국 화학대 트럭운전수를 3천원에 매수해 트럭을 빼낸 뒤 준비해둔 짐과 나머지 가족 모두를 태워 철산으로 이동했다. 철산군 동천리 수산기지 부두에서 합류한 가족들은 이튿날인 11일 새벽 1시께 야음을 틈타 모두 배에 올랐다. 그러나 물이 빠져 출항을 못하다가 상오 11시께 마침내 출항, 꿈에 그리던 남행길에 올랐다.

▷항해◁

배 뒤편에 북한군 등록시 부여받은 「54120」번호판을 부착, 외화벌이 선박으로 보이게끔 했으나 주변이 밝아 불안해진 안씨 등은 연안을 따라 한동안 남하하다가 작은 섬 탄도에 정박, 다시 어둡기를 기다렸다. 하오 8시께 완전히 어둠이 깔리고 주변이 조용한 것을 확인한 안씨와 김씨는 단시간에 최대한 북한땅에서 멀어지기 위해 항로를 중국 산둥(산동)반도쪽 정서향으로 잡아 배를 몰기 시작했다. 10시간여만인 12일 상오 5시께 마침내 북한수역을 벗어나 산둥반도 인근 공해상에 도달한 것을 확인한 안씨 등은 「54120」번호판을 떼어버리고 다시 원래의 「요동어 3043호」선박명을 부착한 뒤 곧바로 뱃머리를 남쪽으로 꺾었다.

여기서 다시 7시간30분여를 항해, 남한 수역에 이를만큼 충분히 남하했다고 판단한 안씨 등은 낮 12시30분께 인천항을 목표로 선수를 서쪽으로 돌렸다. 이들은 1시간30분여만인 하오 2시께 섬을 발견, 『백령도다』라며 환호성을 올렸으나 곧 북한땅 남포부근 초도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질겁, 방향타를 황급히 남으로 꺾었다. 운 좋게 주변에 북한배는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이대로만 가면 남한 땅이다』라고 안심할 즈음 돌연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날씨가 급속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3∼4m의 파고 속에서 겨우 32톤짜리 목선은 가랑잎이나 다름 없었다. 퍼낼 틈도 없이 폭우가 쏟아져 시시각각 배에 물이 차 올랐다. 두 가장은 그저 온가족의 운명을 하늘에 맡긴 채 남쪽으로 잡은 키만을 움켜쥐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배는 시시각각 침수되고 있었다.

▷도착◁

피말리는 시간이 2시간여 지났을 무렵인 하오 4시께 끼어든 중국어선단 사이로 돌연 북한 해군에서 익히 보아온 회색빛 철선이 다가들었다. 순간 덜컥 겁이 난 안씨는 뱃머리를 반대쪽으로 틀었다. 출발전 『만약 북한함정에 발각될 경우는 다같이 빠져 죽자』고 약속했던 터였다. 그러나 2백야드쯤 달아나다 다시 돌아봤을 때 손에 잡힐듯 추격해온 뱃머리에서 태극기가 눈에 확 들어왔다.

한국해군 초계함 「부천함」은 북방한계선 인근 공해상의 중국어선단에서 뭔가 형태가 이상하고 어선으로 보기에는 너무 작은 배가 끼어있어 정밀검색을 위해 접근하던 참이었다.

『살았다』고 확신한 안씨와 김씨 가족들은 모두 갑판으로 나와 백기, 북한기, 중국기 등을 미친 듯이 흔들어대며 『살려 달라』고 목이 터져라 외쳐댔다. 이때가 12일 하오 4시28분. 백령도 남서쪽 5.7마일 해상이었다.<황양준·이동훈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