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스승의 부재를 개탄하는 우울한 현실속에서도 촌지없는 교실 열린교육을 위해 교육현장의 등불을 밝히는 선생님/우리들의 선생님은 언제나 살아있다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둔 진복순씨(37·서울시 송파구 문정동)는 이번 학기에 큰시름 하나를 덜었다.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준다면 또 얼마를 줘야 하나?」를 두고 학기초마다 전전긍긍했던 「촌지걱정」을 안해도 되게 됐다. 『정말로 안 받더라』는 어머니들의 말을 들으면서도 미심쩍은 마음으로 학교를 찾아 간 진씨는 정중하지만 단호한 담임 선생님의 거절에 「봉투」는 꺼내 보지도 못하고 일어서야 했다. 허둥지둥 학교 운동장을 가로 질러 나오던 모습을 생각하면 진씨는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면서도 슬며시 웃음이 돈다. 촌지걱정에서 풀려나기는 서울 상천초등학교 지교분 선생님(62·여)이 맡고 있는 1학년 3반 학부모들도 마찬가지. 지선생님은 매학기초 학부모회가 열리면 『촌지는 절대 안받으니 아예 생각도 하지 마시라』고 못을 박는다. 교사, 학생, 학부모 간에는 어떤 사심도 없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스승에 대한 존경을 돈봉투와 맞바꿀 수는 없지요. 「성의」라고는 하지만 일단 촌지가 오고 가면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납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없게 되죠. 교육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겁니다』
『받으니 준다』 『자꾸 주니 받게 된다』는 끝없는 논쟁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움직임이 교육계에 번지고 있다. 학교 차원에서 촌지수수 거부를 결의하는 학교들이 늘고 많은 「지선생님」들이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부모가 두고간 촌지를 학급운영비나 소년가장 등 불우한 학생을 위해 쓰는 경우도 많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신효종 상담실장이 들려준 사례 한가지. 학년말쯤 돼 통장 한 개가 학부모 앞으로 날아 들었다. 통장에는 그간 학부모가 갖다준 촌지가 꼬박꼬박 적립돼 있었다. 막무가내로 놓고 간 촌지를 그날 그날 고스란히 은행에 적립해 두었던 것이다.
서울 신성초등학교 김광철 선생님은 0점 남편이다. 휴일마다 집을 비우는 데다 집안일에 도통 무신경하기 때문이다. 김선생님을 0점짜리 남편으로 만든 주범은 다름 아닌 환경교사모임 「흙바람」. 환경생태 교육의 충실을 기하기 위한 각종 연구 활동과 현장 학습에 매달리는 교사 모임이다. 『좁은 교실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무척 좋아해요. 돌멩이 하나, 풀 한포기가 교과서가 되고 선생이 되는 셈이지요』
환경교육도 중요하지만 현장학습의 매력과 보람은 무엇보다 학생들과의 정서적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것. 교실에서는 쭈뼛대기만 하던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는 금방 마음을 열어 보인다. 아이들의 맑은 마음과 만나는 즐거움, 김선생님이 박봉을 털고 빠듯한 시간을 내어 현장학습을 떠나는 이유다.
김선생님만이 아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열린 교육, 열린 교실」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전교조) 산하에만도 수십개의 영역별, 교과별 교사 연구모임과 각종 문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교사극단 「징검다리」는 그중 연극을 통해 「사제 동행」을 실천하기 위한 현직 교사들의 연극모임. 방과 후 남는 시간과 방학을 이용해 연극 연습을 해 지금까지 3편의 연작 교육극을 무대에 올렸다. 올 2월에 공연한 「어린 소나무 산에 옮겨 심다」는 교육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황하는 학부모들의 고민과 갈등을 다루었다.
얼마전 서울시 교육청 교육감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날아 들었다. 서울지방법원 여훈구 판사(38)가 28년전 초등학교 2학년때 담임이었던 김명중 선생님(64·서울 인수초등학교 교감)의 평생에 걸친 사랑에 감사를 전하는 편지였다. 정년퇴임을 한 해 앞둔 노스승의 가르침과 남다른 제자 사랑을 가지런한 명조체로 담은 이 편지에서 여판사는 『선생님은 인간성 함양과 훈훈한 인간관계 등 인성 교육을 우선하셨습니다. 졸업때 「여러분이 먼저 연락을 끊지 않는 이상 내가 먼저 연락을 끊는 일은 없을 것」이라시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리고는 졸업 후에도 늘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지속적인 관심은 저에게 커다란 힘이 됐고 지금도 많은 친구와 선후배들이 선생님과 연락하고 있습니다.
또 중풍으로 20년간 고생하시는 사모님과 5남매의 뒷바라지로 가정 형편이 어려우셨으면서도 한번도 내색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당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소리없이 봉사를 해 오셨음을 86년 대통령 표창 소식을 듣고서야 알았습니다』
여판사는 얼마전 딸 돌때는 김선생님이 가장 먼저 축전을 보내 왔다고 자랑했다. 인생 행로를 잡아 주신 스승을 자주 찾아 뵙지 못하는 게 늘 송구스러워 이번 「스승의 날」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 뵐 생각이다. 『일생의 스승을 어린 나이에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라는 그는 『스승의 부재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을 뿐 「숨은 스승」들은 많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우울한 교육 현실 속에서도 우리 교육의 밝은 미래를 점쳐 볼 수 있는 것은 촌지없는 교실, 열린 교육을 위해 애쓰는 「숨은 스승」들의 헌신과 봉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일은 열여섯번째 「스승의 날」.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지내던 옛 스승들께 안부 전화 한통을 띄워 봄도 좋을 성 싶다.<황동일 기자>황동일>
◎초등교사 모임 ‘놀이연구회’/‘아이들은 놀아야 잘 크지요’/전래놀이 수집·보급 9년/5명 선생님이 1,200명으로 늘어/“놀이통해 동심에 숨겨진 창의력·감성 일깨워요”
초등교사 모임 「놀이 연구회」(회장 장효진·서울 강월초등학교 교사) 회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아이들이 잘 놀 수 있을까』이다.
영어 단어 맞추기나 숫자 퍼즐처럼 「놀이 가면을 쓴 공부」가 아니라 땅 따먹기, 공기놀이 등 엄마 아빠들이 동네 어귀에서 즐겼을 진짜 「놀이」를 요즘 아이들이 마음놓고 실컷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이들의 꿈이다. 유치원에서부터 영어, 산수와 씨름하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귀가 번쩍 뜨일 희소식이다.
전래 놀이 보급에 뜻을 둔 교사 5명이 모임을 띄운 것이 87년. 9년만에 매주 세미나 등 연구활동에 참석하는 열성 회원이 30여명, 매달 회보를 받는 전국 회원이 1,200명에 달하는 탄탄한 모임으로 성장했다. 회원 대부분은 20, 30대 초등교사들. 회원들이 직접 발로 뛰면서 모은 전국의 전래 놀이를 92년에 모아 펴낸 「가슴 펴고 어깨 걸고」는 교사들의 입에 회자되는 스테디 셀러가 됐다.
『요즘 아이들은 놀 시간과 장소도 없지만 노는 방법도 몰라요. 시간이 있어도 컴퓨터나 게임기가 없으면 놀지 못해요. 전자 오락이나 플라스틱 블록쌓기는 진정한 「놀이」가 아니에요. 인성과 지성의 조화를 중시하는 우리 전래 놀이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놀이를 한 아이들은 감성 지수(EQ: Emotion Quotient)나 창의력을 일부러 기르려고 애쓸 필요가 없죠. 놀이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부만 강조하는 학부모나 동료교사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놀이연구회의 주요 활동은 놀이를 수집하고 전파하는 것.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잊혀져 가는 전래놀이를 찾아 내고 교사들이 손쉽게 어린이들과 놀 수 있도록 교본으로 만들어 회보 등을 통해 홍보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조선족 동포들이 우리 전래놀이를 잘 간직하고 있는 중국 옌볜(연변)으로 놀이연수를 떠났다.
국내에서 자취를 감춘 수많은 놀이를 그곳 어린이들이 고스란히 잇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자유롭게 놀이를 즐기는 옌볜 어린이들의 폭넓은 사고력과 창의력, 유연함과 너그러움은 놀라울 정도였다. 올 여름에는 옌볜 2차 연수와 더불어 내몽고로 놀이 수집 여행에 나설 계획이다.
이들의 열정이 초등학생 장애아·일반아 통합 여름학교인 「도깨비 캠프」로까지 이어진 것도 벌써 5년째. 매년 7월 놀이연구회 교사들이 꾸리는 이 캠프는 일반아와 장애아가 어우러져 놀이와 야외 활동으로 우애를 다지는 드문 자리다.
지난해 도깨비 캠프의 목표는 『아이들을 놀이에 찌들게 하자』였다. 뜨개실 산가지 공깃돌 등 자연놀잇감으로 교사들이 직접 「놀머니(놀이주머니)」를 챙겨 아이들에게 나눠 줬다. TV나 게임기 없이도 2박 3일동안 신나게 논 아이들의 얼굴에는 예외없이 해맑은 웃음이 피어 올랐다.
올 봄에도 선생님들의 고민은 계속된다. 『이번에는 어떤 신나는 놀이로 아이들을 사로잡을까』<김경화 기자>김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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