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려한 욕망의 판타지욕망을 기록하는 것이 가능한가. 욕망이라는 유동적인 심리적 흐름을 언어로 고정시킨다는 것이, 걸핏하면 대상을 갈아치우고 변덕스럽게 둔갑하는 욕망을 그 정체가 드러나도록 묘사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그것은 모든 소음을 음표에 담으려는 시도만큼이나 무모한 것같다. 그러나 욕망을 기록하는 글쓰기 이상으로 매혹적인 것도 없다. 욕망의 흐름에 따르면서 언어는 물질적 기호의 수준을 넘어 온갖 황홀한 환각을 불러내는 주구로 변한다. 언어에 능한 작가라면 카메라 같은 존재가 자기 언어에 얹어줄 영광에 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김영하의 「도마뱀」(「이다」 제2호)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 무모하고도 유혹적인 시도이다.
「도마뱀」은 한 젊은 여성이 도마뱀 모조품에 촉발되어 꾸기 시작한 일련의 꿈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같은 직장의 남자 강사에게서 선물로 받은 그 도마뱀은 그녀의 꿈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그녀는 열대의 원시림에 들어온듯한 환각에 빠진 가운데 도마뱀이 그녀의 몸을 발치로부터 핥으며 올라오고, 이어 날카로운 쾌감을 남기며 몸 속으로 들어오는 모든 움직임을 응시한다. 이 꿈 이야기가 전하는 것은 그녀가 어려서 습득한 도덕적 검열에서 풀려나와 자신을 욕망하는 몸으로 자각하게 되는 과정이다. 도마뱀 모조품을 변형시켜 나중에는 그것을 선사한 남자로까지 인지하는 시선은 바로 그녀 내부에서 깨어나는 욕망의 작용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꿈 전체는 욕망의 운동이 산출하는 하나의 판타지라 해도 무방하다.
아울러 언급할 것은 그 욕망의 판타지가 그 자체로 충족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중 여성인물은 실제 남자들과의 관계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쾌감을 꿈 속에서 만끽한다. 쾌락이란 언제나 환상속의 사건이다. 그녀의 욕망을 부추긴 남자 강사의 매력도 「유령」같다는 표현이 말해주듯 환영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판이다. 실체없는 환상에 탐닉하는 이러한 행동은 남자 강사가 들려주는 일화, 어떤 사내가 담배 연기로 여자를 만들어 섹스를 하다 죽었다는 일화에서 그로테스크하게 표현되기도 한다.
욕망이 무로부터 무엇인가를 산출한다는 것, 현실의 환상적 왜곡을 통해 움직인다는 것은 「도마뱀」이 포착한 중요한 욕망의 논리이다. 그것은 환상을 현실보다 더욱 리얼하게 체험하는 첨단의 감각적 삶에 대한 인식과 맞물려 있어서 특히 인상 깊다. 이 작품에서 환상의 리얼리즘은 좋게 말하면 정치하고 나쁘게 말하면 쇄말적이다. 그러나 어떻게 말하든 시뮬라크르 문명세대의 감각에 충실한 김영하의 유려한 기예는 감탄할 수 밖에 없다.<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동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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