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북한주민 두가족 14명이 목조어선을 타고 귀순을 요청했다. 두 가족의 탈북은 북한주민이 북한 항구를 출발, 제3국을 거치지 않은채 배를 타고 직접 해상으로 귀순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국내외의 주목을 끌고 있다.이번 해상탈북은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 주민들의 동요와 사회기강의 해이, 북한정권의 주민통제력 약화 등 김정일 정권의 말기적 증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사건이 곧 보트피플의 대량 유출, 대량 탈북 사태로 이어지는 전주곡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다. 앞으로 북한당국이 주민감시와 탈북자 처벌을 더욱 강화할 것이고 일반주민이 32톤짜리 배를 구하기가 힘들다는 점에서 집단탈북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북한의 내부 정세가 점차 혼미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대량탈북이 예상보다 빨리 눈앞에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동안 정부는 아직까지는 대량탈북이 시기상조라는 입장에서 수십명에서 수백명 규모의 탈북 사태를 중심으로 대책마련에 주력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량탈북에 대한 대비태세를 점검하고 만반의 대비책을 강구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하겠다.
첫째, 정부는 기존의 탈북자 대책과는 다른 접근시각을 가지고 대량탈북 문제를 다뤄야 한다. 한꺼번에 수천명 내지 수만명이 밀려드는 대량탈북은 평상적인 상황과는 다른 국가비상사태라고 할 것이다. 탈북자들이 대량으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간첩이나 불순분자들의 위장귀순도 얼마든지 가능하므로 이런 상황은 국가안보상 매우 민감한 위기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나아가 대량탈북은 독일통일에서 보듯이 통일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정부는 이러한 총체적 시각에서 대비책을 강구해야한다.
둘째, 대량탈북에 대한 대책 마련은 흡수통일론의 논란을 초래할 수 있고 북한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는 사안이므로 신중하고 조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 문제를 선정적으로 취급하면서 북한이 당장 망할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탈북자문제의 해결은 물론 한반도 위기의 평화적 관리, 나아가 남북관계 개선차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다루는 데에는 주도면밀한 자세가 요구된다.
셋째, 대량탈북은 정부의 어느 한두 부처만의 힘으로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 유관부처는 물론 지방자치단체, 정부투자기관, 기업, 종교·사회단체 등 각종 민간구호단체, 그리고 일반 국민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힘을 합쳐 대응할 때만이 조기에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한다.
이런 기본시각에서 정부는 탈북자 임시수용시설과 급식, 남한사회 적응 및 정착지원을 비롯한 세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정부는 강원도와 경기도의 폐교나 유휴시설을 개조하여 탈북자 수용시설로 활용하고, 임시시설에 수용된 탈북자들을 점차 지방으로 분산시켜 남한사회 정착을 유도한다는 극히 일반적인 계획을 세워 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의 협조체제나 정부와 민간의 역할분담방안도 제대로 수립되어 있지 않다. 대량탈북 사태에 대비한 급식과 구호대책도 대한적십자사가 대형천막 30여개, 급식차량 12대(1대:300명분), 취사·식기세트 1만개, 구호물자 10여 품목 등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도가 고작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기존의 소극적 대응에서 벗어나 지금부터 종합적, 체계적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대량 탈북 대비책에는 남한사회의 질서유지 및 민심수습, 북한의 대남도발에 대한 대응, 각종 물자수급 관리, 대주변국 외교수행, 유엔고등판무관(UNHCR)이나 국제적십자사연맹 등 국내외의 민간기구 협조 활용 방안 등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 또 정부는 독일식의 「긴급수용법」 제정도 대기입법의 형태로 미리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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