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무시한 지침·공문 학습질 떨어뜨려/학무모들 무리한 항의·요구땐 의욕 저하학교 현실을 무시한 채 교육청이 일방적으로 내려 보내는 수많은 지침과 공문, 체벌에 항의하며 『당신이 뭔데 내 아이에게 손을 대느냐』고 으름짱을 놓는 학부모, 규정까지 무시해 가며 부당한 일을 지시하는 학교의 윗사람들. 나름대로의 포부를 펼쳐 보려는 교사들이 부닥치는 대표적인 걸림돌들이다.
경기 부천 B초등학교 L교사(29)는 교육청의 「경쟁력 10% 높이기」지침이 교육의 질을 떨어 뜨리고 교사의 의욕을 꺾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 1학기부터 학급당 43명 정도였던 학생수가 48, 49명으로 늘어 났어요. 학년별 학급수가 하나씩 줄어 들었죠. 학생수가 점점 줄어야 정상인데 어떻게 이런 결정이 내려졌는지…』
학급수가 줄면 당장 비용절감은 될 지 모르지만 교육에는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L씨와 동료교사들의 생각이다. 『학급수를 기준으로 배정하는 실험실습비 등 학교운영비는 지금도 열악합니다. 또 학급이 줄어 남게 된 교사는 때가 되면 다른 학교로 가게 돼 결국 교사가 줄게 됩니다. 지금은 예체능 과목에 한해 전담교사를 두고 있는데 앞으로 그런 여유도 어렵지요』
L씨는 지난해 학급 전체에 단체 기합을 줬다가 곤란을 겪었다. 몇몇 학부모가 찾아 와 『스트레스를 아이들한테 푸는 거냐』고 교장실까지 찾아 가 사과를 요구했다. 교장의 사과 종용이 있었지만 그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소신을 갖고 한 일이지 결코 감정을 앞세우지 않았으니까요』
이런 사례가 잇따르고 있지만 대부분 순응하고 마는 것이 교무실의 분위기. 서울 강남 D중학교의 O교사는 『교사는 제도적으로 약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사권 등을 모두 교장이나 재단 이사장이 쥐고 있고 의사결정과 집행이 철저하게 상명하달식이어서 늘 윗사람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근무규정이나 상급 기관의 지침과 동떨어진 부당한 지시에도 항의하기 어렵다. O씨는 시간외 근무와 자율출퇴근제를 예로 들었다. 『토요일 시간외 근무는 원래 숙직교사를 정해서 시키도록 교육부 규정이 정하고 있으나 많은 학교가 주번 교사를 근무시키고 있어요. 시간외 근무수당을 아끼려는 것이죠.
또 교육개혁위원회가 보충학습과 자율학습으로 교과시간이 늘어나는 것을 인정해 학교별로 출퇴근 시간을 총근무 시간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용하도록 자율출퇴근제 실시를 지시했지만 제대로 지키는 학교가 거의 없습니다』
O씨는 학교운영위원회도 별다른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교사와 학부모들의 의견을 학교 운영에 반영하는 게 운영위의 취지지만 결국 학교 방침을 일방적으로 추인하는 자리가 되고 맙니다. 운영위에서 반대의견을 냈더니 교장선생님이 「당신은 앞으로 담임 안 시켜」라고 폭언을 하더군요』
서울 강남 S고교 C교사는 『현재와 같은 입시위주의 교육 분위기에서는 창의적으로 학생지도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대학 갈 능력도 의사도 없는 아이들이 책상에 머리를 붙인 채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미안한 마음과 교직에 대한 회의가 듭니다. 보통 4분의 1이상이 학교수업을 포기했어요. 이 아이들에게는 무엇인가 다른 것을 가르쳐야 하는데 대입 합격률이 교육의 질을 따지는 잣대가 된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답답하기만 합니다』<이상연 기자>이상연>
◎‘참교육’ 정착 학부모도 나섰다/자발적 단체 만들어 간섭보다 도움으로 건전한 ‘치맛바람’
교육문제 해결에 학부모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교사, 학생과 더불어 학부모가 가장 중요한 교육주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인간교육 실현 학부모 연대」, 「참교육 시민모임」,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교육운동협의회」, 「자녀 교육문제 연구를 위한 인천시민의 모임」 등 학부모 단체들이 속속 만들어 지고 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사무처장 윤지희씨(38)는 『학교와 선생님들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참교육의 시작은 가정에서부터라는 인식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는 참교육과 학부모의 교육권 확립을 위한 모임. 89년 9월 기존 육성회 체제의 문제점을 제기한 육성회비 반환 청구소송을 통해 발족했다. 전국 17개 지부에 3,00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굵직한 정책활동은 주로 중앙본부의 몫이고 지부에서는 어린이 대상 문화프로그램 제공과 각종 교육강좌가 주된 활동분야이다. 최근에는 학부모가 교육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인데도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학교운영위원회의 정착을 위한 홍보와 학부모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이외에도 학부모 상담실 운영, 학부모 신문 발간 등의 활동도 활발히 펴고 있다.
운영비의 대부분을 회비에 의존하기 때문에 살림은 늘 빠듯하다. 『최소 상근 인력 외에는 회원들의 자원봉사에 운영을 의존하고 있습니다. 학부모회가 나름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빠듯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참여해 준 주부회원들 덕분이지요』
가장 큰 어려움은 교육 관료와 일부 교사들의 편견. 학부모들의 교육참여 활동을 성가셔하며 무조건 배격하려 드는 예가 잇따르고 있다. 윤처장은 『학부모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활성화하면 할수록 교육문제 해결은 빨라지고 쉬워진다』며 적극적인 발상의 전환을 촉구했다.
사정은 다른 단체들도 비슷하다. 활동 방향과 내용은 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교육의 백년대계를 튼튼히 세우려는 의지와 회원들의 헌신만큼은 다를 바 없다.
이들 학부모들의 유쾌한 「치맛바람」이 교육현장의 검은 「치맛바람」을 밀어낼 날은 언제일까.<황동일 기자>황동일>
◎서울 충암초등교 김성완 선생님/“사랑의 매 새롬이 놓을 수는 없어요”/아주 속이 상할땐 한박자 쉬면서 다시한번 생각하죠
『오늘 또 새롬이와 만났다. 다음부터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겠다』 『새롬이에게 눈물이 핑 돌도록 맞았다. 새롬이가 밉지만 내 잘못이다』
서울 충암초등학교 6학년 난초반 어린이들의 일기에는 이런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학부모들은 새롬이라는 나쁜 친구가 있나 하고 눈살을 찌푸렸다가 담임 선생님 김성완씨(30)가 늘 교탁 위에 두고 있는 굵기 1㎝, 길이 50㎝ 가량의 회초리가 새롬이의 정체라는 설명을 듣고는 피식 웃음을 머금게 된다.
93년 서울교대를 졸업한 김씨가 「가르침의 회초리(교편)」를 들기 시작한 것은 이듬해 이 학교 교단에 서면서부터. 혼자서 47명이나 되는 반아이들을 이끌어 나가기가 힘에 겨웠다. 아이들에게 단순한 도구로 인식되거나 자신의 감정 풀이 도구가 아닌 보조 수단이 필요했다.
아이들과의 토론을 거쳐 회초리에 새롬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새로운 사람이 되라」는 뜻이었다. 새롬이보다 더 크고 「만나면」 오랜 아픔을 남기는 새롬이 형도 있었다. 『새롬이의 존재에 대해 아이들은 두려움과 친숙감을 동시에 느끼는 것 같아요. 전에 가르친 아이들이 인사를 할 때면 꼭 「새롬이 잘 있어요?」라고 물어 옵니다. 얼마전에 새롬이가 부러져 동여 맨 테이프를 아이들은 새롬이 붕대라고 자연스럽게 부르더군요』
5월1일 난초반에서는 새롬이 형의 운명을 놓고 학급회의가 열렸다. 다수의 의견은 새롬이 형을 그대로 두자는 것이었지만 김씨가 직접 나서서 새롬이 형을 떠나 보내기로 최종 결정했다. 『아이들 성적도 잘 나오고 생활태도도 많이 좋아져 없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들었어요. 또 피부가 약한 아이들에게 자국을 남기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 제 자신이 감정에 쏠릴 가능성을 배제하려는 고려도 있었습니다』
새롬이와의 만남은 아이들과 미리 정한 약속에 따랐다. 「익힘책 1쪽 안해 오는데 1대」식이다. 숙제와 담당구역 청소 등 생활태도가 주된 지도 영역이다. 학교 생활에서 바람직한 행동은 1점을 주고 반대의 경우에는 1점을 빼 일정 점수 이하가 되면 새롬이와 만나도록 했다. 『새롬이를 만난 후 바르게 가는 아이도 있고 별 효과가 없는 아이도 있어요. 때리면서 말을 곁들여야만 효과가 있고 새롬이를 들고 아이들 표정을 살핍니다. 많이 두려워 하거나 뉘우침의 빛이 역력하면 살짝 대기만 하지요. 자기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맞겠다고 당당히 나설 때도 매를 줄여줍니다』
새롬이를 들고서도 반드시 한박자를 쉰다. 아주 속이 상할 때는 교실을 빠져 나가 담배를 한대 피우고 돌아와 새롬이를 든다. 엉덩이보다는 손바닥을 때리고 많아야 두세대면 족하다. 『두어번 학부모로부터 항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럴때는 자신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보지요. 한때는 새롬이마저 없애려는 생각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이 없습니다. 아이들의 친구이고 절대로 감정에 치우치지 않을 자신이 생겼거든요』<황영식 기자>황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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