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김치와 우메보시(장명수 칼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김치와 우메보시(장명수 칼럼)

입력
1997.05.14 00:00
0 0

이국땅에서 평생을 산 사람들이 같은 민족끼리 노년을 보낼 수 있는 양로원을 지어달라고 한다면 지나친 요구일까. 『그것은 세금과 보험료를 낸 사람들의 정당한 권리』라고 사카이시(대판부 계시)에 있는 「고향의 집」 원장 윤기(55)씨는 말했다. 일본의 고령자 복지정책은 노인들이 담당부서에서 지정해 주는 양로원에 배치되지 않고 자기 마음에 드는 시설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같은 문화와 습관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사는 시설을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목포에서 고아원(공생원)을 운영했던 나의 어머니(윤학자 여사)는 일본인이었지만, 고아들과 같은 음식을 먹으며 한평생 한국인으로 사셨어요. 그러나 세상을 떠나기 전 병원에서 식사를 할 때는 김치 대신 우메보시를 간절히 먹고 싶어 하셨어요.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도 같겠지요. 늙어갈수록 그들은 우메보시가 아닌 김치를 원할 것입니다. 우리 노인들이 김치와 온돌방과 장구소리 속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고향의 집을 세운 목적이었습니다』

89년에 완공한 고향의 집은 건강이 좋지 않은 노인들을 위한 특별양호시설로 80명을 수용하고 있는데, 1급 호텔 못지않은 시설에 밝고 깨끗하다. 노인들의 평균연령은 83세 최고령자는 98세이며, 의사 2명을 포함, 간호사 복지사 등 60명의 직원이 그들을 돌보고 있다. 월 27만엔(190만원)의 입원비는 각 개인의 주민등록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전액 부담하고 있다.

고향의 집은 모든 교포 노인들이 선망하는 꿈같은 집이다. 작년에 견학왔던 고베(신호)지역의 교포 할머니들은 윤원장에게 고베에도 같은 시설을 짓도록 추진해 달라고 졸랐고, 다시 찾아온 김용성(72)씨는 5,000만엔을 기부했다. 『7남매를 다 키우고 편하게 살 만하니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이 돈은 남편과 함께 땀흘려 모은 돈이니 민단이든 조총련이든 서로 사이좋게 살 수 있는 양로원을 지어달라』고 그는 말했다. 지난 4월 아사히(조일)신문 사회면 톱기사로 그 이야기가 보도됐고, 일본 전역의 교포들로부터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교포 70만명중 10%인 7만명이 노인이라고 볼 때 이런 시설이 최소한 10개 이상 있어야 합니다. 일본에서 노인시설을 지을 때는 공익법인이 총 비용의 25%를 부담하고, 지방자치단체가 25%, 중앙정부가 50%를 지원해 줍니다. 우선 도쿄(동경) 오사카 고베에 100명 수용규모의 시설을 짓는다면 70억엔 정도가 필요한데, 우리가 그중 20억엔 정도를 부담하면 되지요. 그래서 30만명이 1만엔씩 내자는 캠페인을 시작했으며, 고베는 현재 설립부지를 찾는 단계까지 갔습니다』

윤원장은 앞으로 민단과 조총련이 교포들을 위한 복지시설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시설을 커뮤니티 센터로 키워 가자고 제안한다. 조총련이 가지고 있는 146개의 학교중에는 차츰 복지시설로 전용할 수 있는 곳들이 있고, 힘을 합쳐 공익법인을 설립하면 모금운동이나 정부보조를 얻는 일도 보다 쉬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돕던 일본의 후원회들에 힘입어 5억엔을 모금하여 고향의 집을 세우고 일본인인 아내(윤문지씨)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어느 누구도 이같은 시설을 더 세우지 않는 것을 아쉬워한다.

고향의 집에서 만난 노인들 중에는 도쿄대학을 나온 아들 셋이 모두 북한에 가 있다는 할머니가 있었다. 나는 『편지는 자주 옵니까』라고 물었다.

『그럼. 저희들은 잘 살고 있으니 어머니 몸 건강하게 잘 지내라고…』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번지기 시작했다. 흐느낌도 없이 계속 흐르는 눈물…. 어린아이처럼 작고 허약한 몸으로 그는 분단의 비극까지 짊어지고 있었다.

안내하던 고향의 집 직원이 말했다.

『저 할머니는 치매가 심한데 아들 편지는 잘 기억하고 있네요. 저녁이 되면 쌀을 사다가 밥을 지어야 한다고 양로원 안을 헤매고 다니지요』

나라없는 백성으로 일본에서 살며 고생도 서러움도 많았을 그들…. 고향의 집은 그들의 고단한 황혼을 고향의 따뜻함으로 달래주고 있다. 고베에, 도쿄에, 오사카에, 후쿠오카에, 히로시마에, 더 많은 「고향의 집」이 세워지기를 빌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작별하였다.<편집위원·일본 사카이시에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