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이다. 무지몽매한 사람, 가여운 사람, 우직한 사람만 어울려 사는 듯이 보이는 요즘 우리나라에 특별히 지혜의 빛으로 오신 날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보이지 않는다. 부처님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자신은 지혜의 빛으로 왔노라고 한다. 저 오월의 태양보다 천 배나 더 밝은 지혜의 빛으로 왔노라고 한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다. 어리석고 미련하여 탐욕의 어두움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이 땅의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사람살기가 가장 좋은 세상은 성인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다. 가장 이상적인 정치를 하는 나라는 국가를 다스리는 지도자가 누구인지 백성이 모르는 나라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혜의 빛으로 오시는 세존이 가장 먼저 꼭 오셔야 하는 나라다. 너무나 많은 어둠이 덮여 있기 때문이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대통령을 지낸 두 사람이 동시에 감옥생활을 하고 있다. 또 한 대통령은 중도하차를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연일 나오고 있다. 그뿐인가 정치지도자, 유수한 재벌, 은행책임자들이 줄줄이 검찰청의 문과 감옥문을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다. 진실을 밝히는 청문회는 여러번 보다가는 멀쩡한 사람 버리기에 딱 알맞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7일부터 그렇게 기다리던 단비가 내렸다. 오랫동안 가물어서 곳곳에 산불이 나고 저수지가 바닥이 났던 터라 참으로 반가왔다. 그러나 반가운 마음도 잠시뿐, 이 기회를 틈타 또 많은 공장에서 정수비용을 아끼려고 오물과 페수를 방류하고 있지나 않을까 생각하니 기분이 씁쓸하고 가슴이 답답하다. 어느 한구석도 비리, 부정, 부패, 허위가 없는 곳이 없다.
법화경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뒤덮여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참으로 진실하게 그리고 있다. 『그곳은 오래 되어 낡고 큰 집이다. 거기에 불이 일어나서 집 전체를 태우고 있다. 물 속에는 온갖 더러운 오물로 가득 찼는데 솔개, 올빼미, 부엉이, 독수리, 뱀, 독사, 전갈, 지네, 여우, 이리들이 송장들을 씹고, 썰고 하여 뼈와 살이 낭자하며 개와 도깨비, 야차들이 몰려와서 먹을 것을 찾느라고 물고 찢고 으르렁대며 싸우고 짖는 소리, 도저히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어쩌면 그렇게도 오늘 우리나라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삶의 지혜를 불교에서는 언제나 빛으로 상징한다. 그렇다. 빛이 전혀없는 어둠의 세상이라면 우리는 길을 가는데 아무리 평탄한 길이라도 숱한 상처를 입을 것이다.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인생의 길을 가는데도 지혜의 빛이 없다면 그 어떤 삶도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고 상처를 입을 만한 일만 저지른다. 크든 작든 지난날 상처를 입은 순간이 있었다면 그것은 분명 자신의 탐욕과 어리석음에 의한 어두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지옥을 해와 달의 빛도 없는 어두운 곳에 있다고 한다. 따라서 극락은 무한한 지혜의 빛으로 충만한 무량광불이 주재하는 곳이다.
부처님이 히말라야산 부근의 어떤 숲속에서 수행하고 있을 때였다. 홀로 조용히 명상하고 있는 동안에 이와 같은 생각을 하였다. 「정치라는 것을,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는 일도 없고, 정복하거나 정복당하는 일도 없고, 슬프거나 슬픔을 당하는 일도 없고, 억울하거나 억울함을 당하는 일도 없이 도리 그대로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그러자 사악한 마라가 부처님 앞에 모습을 나타내면서 속삭였다. 『부처님, 스스로 정치를 하시오. 스스로 통치하여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는 일도 없으며, 정복하거나 정복당하는 일도 없으며, 또 슬프거나 슬픔을 당하는 일도 없으며, 억울한 일이나 억울함을 당하는 일도 없이 도리 그대로인 정치를 실현하시오』
부처님은 위엄스럽게 사악한 마라에게 말했다. 『마라여, 그대는 나에게 무엇을 가지고 스스로 정치를 하라고 말하는가』
마라는 다시 속삭였다. 『부처님 당신은 여의족이라는 어떠한 일도 뜻대로 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당신이 결심만 한다면 저 히말라야산을 변화시켜 모두 황금으로 바꿀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은 게송으로 대답했다. 『저 설산을 변화시켜 황금으로 만들고, 더욱이 황금을 두 배로 한다해도 한 사람의 욕망을 채우지는 못하리라. 이를 알아라 사람들이여, 지혜로써 올바르게 살라』<조계종 승가대학원장>조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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