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파동에 연이어 4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한보비리사건, 그리고 92년 대선자금 논쟁으로 정국이 표류하고 있다. 표류정도가 아니라 정국도 시국도 앞이 캄캄한채 국가적 위기로 치닫고 있다. 야당은 연일 대선자금 공개를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고 여당과 청와대는 특히 「한보로부터 900억원 수수설」이 야당의 음해 공작이라고 반격하여 이래저래 국민을 어리둥절케 하고 있다. 꽉막힌 시국의 해법은 정말 없는가. 해법은 분명히 있다. 되풀이 말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이 결자해지의 자세로 서둘러 결단을 내리면 되는 것이다.대선자금에 대해 야당은 김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3,000억원과 정태수씨로부터 받은 900억원 등 도합 3,900억원의 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우선 간주한다며 전모 공개와 사과를 촉구하는 한편 이를 논의하기 위한 여야 총재회담을 제기했다. 이에 청와대는 야당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정략적이라며 총재회담도 일축, 대선자금 문제는 평행선으로 치닫는 형편이다.
이같은 정치권의 공방에 대해 국민은 시국 걱정에 불안해하고, 그들의 자세에 분노하고 있다. 온갖 비리와 부정으로 나라가 이지경이 되고 국민이 가슴을 끓고 있는데도 부정을 저지른 장본인들이 진지한 반성자세와 실천으로 흐트러진 시국을 수습할 생각은 않고 자기 변명과 입씨름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여야의 태도는 모호한 점이 적지 않다. 야당의 경우 대선자금 공개주장이 혹시나 3김 퇴진론을 피하고 또 집안사정을 희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대선자금의 폭로는 정확한 근거와 자료를 제시하는 것이 공당의 자세다. 반면 청와대가 900억원 수수설을 음모설 운운하는 것은 납득할 수가 없다. 도대체 권력의 심장부가 음모의 대상일 정도로 허약하다는 얘기인가. 스스로 「음모」의 진상을 밝히고 즉각 검찰에 고발하거나 수사토록 조치해야 한다. 그것이 책임있는 국정운영의 자세다.
지금 경제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실업자가 늘고 중소기업의 잇단 도산 등으로 민생이 최악의 상황에서 한보정국, 대선자금 정국이 무한정 계속되기를 원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현재상태에서 덮는다고 나라가 활력을 찾기는 불가능하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오직 진실이 규명된 후의 매듭이다.
한보비리의 진짜 진상, 70여억원의 자금은닉과 돈세탁을 한 것으로 전해지는 김현철씨의 부정과 국정개입의 진상, 그리고 대선자금의 의혹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따라서 검찰은 김현철씨 비리에 대한 수사를 서둘러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
아울러 김대통령은 대선자금의 실체, 얼마나 모았고 어떻게 썼는가를 밝혀야 한다. 또 남은 자금이 있다면 그의 행방도 분명히 소명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한보정국, 대선자금 정국에서 벗어나 민생정국, 대선정국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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