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희의 테크닉·김기인의 내면탐구·김영희의 충격적 묘사·전미숙의 통념파괴·윤미라의 안정된 기량/높은 수준에 관객갈채 절로매년 「춤작가 12인전」을 주관하는 한국현대춤협회 조은미 회장(이화여대 교수)은 인사말을 통해 주최 입장에서도 관객못지 않게 작품의 옥석을 가린다는 점을 강조했다. 주최측 설명이 아니더라도 11회째를 치른 이 공연(7∼9일 문예회관 대극장)은 이미 무용계를 대표하는 실속있는 행사로 인정받고 있다.
첫날 첫 공연을 한 김선희는 무용콩쿠르를 석권한 경력 만큼이나 무대를 압도하는 힘이 있다. 타고난 테크니션 기질로 매번 관객을 사로잡기 때문인데 이번에는 발레기교의 절도와 소재의 대중성이 그의 끼와 섞여 화려하기까지 했다. 「흐르는 사랑-피아프」에서 에디트 피아프로 분장한 김선희의 연기력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남학생들의 신선함과 함께 갈채를 자연스럽게 유발하는 밝고 흥미진진한 보기드문 무대를 연출했다.
김선희가 전문 춤꾼의 기교적 면모를 강조했다면 김기인은 아주 대조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탐구작업을 내놓았다. 김기인의 춤은 철저하게 개인적이고 의지가 강한, 어찌보면 비현대적이기까지 한 일면이 있다. 그의 다른 작품처럼 「마음의 빛」도 인체가 지닌 힘의 다양한 강도를 리듬감있는 작은 몸짓들에 담았다. 평소에 비해 동작의 흐름이 빨라지고 탄력이 강조되었다는 점이 이번 작품의 특징이다.
같은 형식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김영희 역시 뒤지지 않는다. 김영희의 솔로작품은 대부분 원형으로 제한된 공간 안에서 이뤄지는데 이번 작품 「여기에」는 석고처럼 보이는 원형의 무대장치로 공간을 더욱 좁혔다. 사람을 해치거나 물건을 깨뜨리는 살오름에서 묘사되는 살에 대한 그의 생각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서로 살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호흡의 강약이 움직임을 전적으로 지배하는 과정에서 살기가 급속하게 몸을 통과하는 듯한 느낌이 현실처럼 충격적으로 묘사됐다.
김영희가 음악이나 장치의 도움을 절제하면서 개인적인 생각을 담아낸다면 전미숙은 모든 요소를 최대한 작품에 응용한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볼거리가 많아진 전미숙의 작품들은 예상을 뒤엎는 아이디어의 창구다. 「나비·꿈」에서도 무대중앙에 걸려 있는 커다란 곤충채집용 망이 작품을 끌어나가는 중심이었다. 그가 내세운 나비는 심장을 찌르는 악역이었고 내용상의 주인공은 심장이었는데 나비채 뒤로 보이는 그네 탄 전미숙의 흔들림은 일순간 심장의 박동으로 보이는 이중의 이미지를 담아냈다.
안무와 춤연기를 동시에 보여야 하는 작가전의 전통은 작가의 역량을 갖출 시기가 되면 기량이 감퇴한다는 자연스런 문제를 내재하고 있다. 하지만 윤미라의 경우는 이것을 문제삼지 않아도 될만큼 조화를 이뤄 눈길을 끌었다. 한국무용가의 면모를 간직한 그는 이제 전성기를 맞이한듯 발디딤새에 안정감을 얻어 감칠맛나는 춤매무새를 과시했다. 한 폭의 그림 속에서 잠시 나와 춤을 추고 들어가는 시적인 영상을 만들어내면서 힘과 기교는 물론 한국춤의 특징이기도 한 살살거림, 미소, 교태까지도 충분히 소화시켜 감동을 남겼다.<문애령 무용평론가>문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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