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후배의 늦둥이가 있는데 귀엽기도 하지만 여간 똑똑하지 않다. 학원에 가라면 지레 겁부터 먹는 우리집 애들과는 달리 국민학교도 안 간 어린 놈이 언젠가는 우리 딸에게 『누나 재미있어, 가 봐』하고 권했는가 하면 한글도 모여서 배워 아주 일찍 깨쳤다. 동네 엄마들의 우상임은 물론이다.약 20여년 전 미국에서도 수퍼 베이비붐이 불면서 「너의 아기에게 가르칠 수 있다」 등의 책들이 유행했을때 나도 그 책들을 읽으며 겨우 두 돌지난 첫아이에게 읽기를 가르쳤다. 큼직한 종이에 「아빠」 「엄마」 「여세요」 「닫으세요」 등을 써놓고 번쩍 한 번 같이 읽고 방안을 즐겁게 뛰어다니거나 안아주면서 반복하라는 지침대로 실행했다. 어느 날 학교 문의 「여세요」라는 단어를 읽어 사람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쳐다보았을 때 신문에라도 내고 싶었다. 『우리 아들 글읽기 시작했다』고.
그러나 조금씩 느는 내 욕심에 아이가 오히려 읽기 놀이를 피하는 것을 알고는 그만두었다. 그 후로 두 아이에게 남보다 먼저 애써 글자를 가르친 적은 없다. 오죽하면 딸애는 만 5살때도 받침있는 글자를 읽지 못해 통닭집앞을 지나며 큰소리로 「다ㄹㄱ」으로 읽어 웃음거리가 되었을까. 하루는 딸애가 우유를 마시다가 『사밑에 ㄱ붙으면 뭐에요?』 『삭』 『그러면 유밑에 ㅁ달린건 뭐에요?』 『윰』 차례차례 묻고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더니 거꾸로 받침을 붙여 보았는지 『아, 그래서 삼육우유구나』했다. 그 후로 엄마들끼리 돈들여 글자 가르치는 이야기 나오면 뛰어와 말한다. 『안해도 돼요. 나도 엄마가 안 가르쳐주고 혼자 배웠어요』
그대신 미국에서 자란 아이의 첫 침대보는 동물 이름과 그 동물의 첫 글자가 쓰인 걸 사주었다. 자기 전에 동물 찾으며 한번씩 부담없이 날마다 보니 늦기는 했지만 절로 익혀졌다. 또 제 친구들이며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름 첫 글자를 가르쳐 주었더니 그들을 만나 반가울 때마다 되뇌니 시간은 남보다 배는 걸렸지만 소리값도 절로 익혀졌다. 조기교육이며 영재교육은 이론적 무장에다 상업성까지 겹쳐 엄마들의 마음을 무척 들뜨게 한다. 그러나 애들이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너나없이 하는 것은 오히려 저절로 꽃필 학습의욕을 꺽어버릴 뿐이다. 아니, 그보다 그렇게 애써서 빨리 배운 것이 긴 인생에 도대체 무슨 큰 차이가 있는 것일까? 남보다 늦게 배웠지만 지금은 두 애 모두 앞서 달리던 애들이나 별로 차가 없다.<옥명희 소화출판사 편집부장>옥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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