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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의 바다에 한줄기 빛 법어/역대 종정들의 초파일 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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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의 바다에 한줄기 빛 법어/역대 종정들의 초파일 법어

입력
1997.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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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살인의 경지담아 중생의 무명 구도/‘성인과 악마는 부질없는 이름’ 등 통념 초월부처님 오신 날(4월 초파일) 고승이 토해내는 법어는 촌철살인의 경지를 담아 번뇌의 바다를 헤매는 중생의 무명을 밝혀준다. 올해는 불교계 장자종단인 조계종 월하 종정이 초파일법어를 내지 않아 불자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조계종 역대종정 등의 초파일법어에 담긴 의미를 살펴본다.

조계종 6, 7대 종정 성철(1912∼1993) 스님의 법어는 암울했던 시대를 밝히는 한 줄기 등불이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는 취임법어부터 범상하지 않았다. 삼라만상이 그대로 우주의 법신체(생로병사의 속박에서 벗어난 진리의 몸체)일진대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중생의 미망을 아쉬워한다.

『성인과 악마는 부질없는 이름이라 장엄한 법당에는 아멘소리 진동하고 화려한 교회에는 염불소리 요란합니다』상식과 고정관념을 통쾌하게 깨부수는 파격이 스며 있다. 깨침의 경지에서 보면 석가나 예수나 공자가 따로 없으며 진리의 산은 하나이되 종교마다 오르는 길이 다를 뿐임을 가르친다.

『나는 새, 기는 벌레, 사나운 짐승, 온순한 양떼가 형제 아님이 없으니, 작은 생쥐와 날쌘 고양이, 독사와 개구리가 한 집에서 형제로 살아가니 참으로 장한 일입니다』 생명에 대한 무한한 경외와 화합의 정신을 보여준다. 초파일 법어는 아니지만 『어떤 도적놈이/ 나의 가사와 장삼을 빌려 입고/ 부처님을 팔아/ 자꾸 죄만 짓는다』는 법문도 의미심장하다. 성철 스님은 이처럼 법어를 통해 물질을 앞세워 삶의 허상에 매달리는 우리에게 참삶의 자세를 일러준다.

제2대 종정 청담(1902∼71) 스님은 속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평이한 언어를 사용했다. 『…부처는 본래 오고감이 없지만 중생을 고해에서 건지려 나타내보이는 것이며 마음을 항상 맑고 깨끗이 갖는 것이 부처님 오신날 등불을 밝히는 마음이다…』 불자의 자세에 대해 쉽게 일깨워준다.

초대 종정을 지낸 효봉(1888―1966) 스님은 『바다 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 타는 불 속의 거미집에 고기가 차를 달이네. 이 집안 소식을 뉘라서 알랴』는 오도송으로 사물의 본질에 도달하고자 했다.

구산(1909∼83) 스님은 『석가세존이 탄생하시었다 하더라도 불자가 아니요, 탄생하시지 않았다 해도 불자가 아니다. 왜 그런가? 탄생하시었다고 한다면 생과 멸이 있게 되니 참다운 부처가 아니요, 탄생하시지 않았다고 한다면 불생불멸이니… 어찌 참으로 부처라 할 수 있겠는가』 부처는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는 가르침이다.

현 종정 월하 스님은 지난해 초파일 법어에서 『허공이 내외가 없듯이 심법 또한 이와같다. …무량공덕이 법계에 충만할 때 모든 성현이 함께 찬탄하고 뭇 사람들은 춤을 추며 태평가를 부른다』고 부처님 탄생의 의미를 짚고 있다. 역대 종정중 유일하게 생존한 서옹(백양총림 방장) 스님은 『필경에 어떠한 것이 처벌없는 참 사람인고. 사자 굴속에는 다른 짐승이 없고 큰 코끼리 가는 곳에 여우 자취 끊어지도다』라는 법문에서 이타행을 강조했다.

◎종단지도자들 법어 발표

불교 각 종단지도자들은 14일 불기 2541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법어를 발표, 부처님 탄생의 참뜻을 되새기고 국난극복을 기원했다.

▲월주 조계종 총무원장=인간의 마음속에는 지혜와 이웃을 사랑하는 훌륭한 덕성이 구족돼 있으나 이 마음이 번뇌와 탐욕으로 길들여질 때 지옥을 만들고 지혜스러울 때 극락과 해탈의 길을 열어간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고통받는 중생을 외면해서는 안되며 따라서 북한동포를 돕는 일도 이타적인 자비정신을 통해 시작돼야 민족공동체의 아픔을 함께 할 수 있다.

▲보성 태고종 종정=인류의 평화와 행복의 유지를 위해서는 자비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자비정신과 지혜의 구현은 마음을 맑게 하는데서 시작된다. 이기심을 버리고 깨끗한 마음과 생각으로 청정불국토를 이루어가자.

▲각해 진각종 총인=인류구원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높이 받들고 정진하자. 북한동포들이 경제난과 식량난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에 따라 작은 콩 한 조각이라도 나누는 이타행을 실천하자.

▲도용 천태종 종정=사회적 병리현상의 근원적 해결은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밖에 없다. 이를 위해 동체대비의 정신과 자주, 평등의 이념과 상의상존의 인연법으로 살아가며 인간 사회의 불안과 고뇌를 제거하자.<서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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