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분별없는 정부의 통상 굴복(사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분별없는 정부의 통상 굴복(사설)

입력
1997.05.11 00:00
0 0

우리 정부는 미국 등 선진국들의 통상압력에 전통적으로 약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이번에 또 다시 확인됐다. 정부는 지난 9일 경제장관회의에서 『수입품에 대한 차별조치를 배제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것은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우리 나라 시민단체들이 주도하여 벌이고 있는 과소비 추방과 근검절약운동을 수입억제 운동이라고 비판, 세계무역기구(WTO) 등에 제소하겠다고 위협해 온 데 따른 조치다.정부는 지금까지 시민단체들의 자발적인 운동이며 소비절약은 미덕이라는 주장을 내세워 미국과 EU의 비판에 대응해 왔다가 결국 이들의 압력에 굴복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이들의 주장을 시인하고 만 것이다. 정부는 중대한 오판을 한 것이다. 우선 정부 스스로 그 자신의 위신을 실추시켰다. 미국과 EU 등은 시민단체들의 소비억제운동을 순수한 민간주도운동으로 보지 않고 과거처럼 정부가 막후에서 국제수지개선대책의 일환으로 조정한 운동으로 보고, 이것의 철폐를 강력히 요청했던 것이다. 정부가 당초의 논리를 관철하지 못한 것은 결국 관여했다는 것을 시인한 것이 된다. 정부가 거짓말을 했다가 이것을 시인하고 시정한 형태가 됐다.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 시민단체의 신뢰에도 큰 상처를 준 것이다.

또한 정부는 미국과 EU에 대해서 압력만 가하면 굴복한다는 확신을 다시 굳혀주게 됐다. 정부는 통상외교의 호혜·평등원칙을 쟁취해야 하는데 스스로 이것을 어렵게 만든 것이 됐다. 정부는 심지어 외국정부와 수출상들의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기업별 소비재수입 현황 등 문제성 있는 소비재수입 관련 통계조사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것 또한 얼마나 우습게 들리는가. 정부가 무척이나 조심스러워 하는 것 같다. 오해 받을 짓을 아예 하지 않겠다는 뜻인 것 같은데 실태파악 등 통계상 필요한 것은 당연히 조사를 계속해야 한다. 다만 공개여부만 신중히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크게 우려하는 것은 정부측의 이번 조치가 현재 강도있게 전개되고 있는 과소비 추방운동 등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정부는 민간단체들의 소비절약운동을 권장하지는 못할망정 이것을 위축시키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우리에게는 소비가 미덕이 아니다. 이것은 소비가 경기를 자극, 불황을 타개하는데 크게 기여한다는 케인스경제학에서 나온 것인데 지금 우리가 불황을 극복하는 데는 소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고비용 저효율의 경제체제를 고효율 저비용 체제로 전환, 경쟁력 강화로써 수출·내수를 증대시켜 타개하는 것이 정석이다. 저축과 절약으로써 금리 등을 낮추는 것이 긴요하다.

또한 품질이 같고 값이 같다면 외제품보다는 국산품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과소비억제는 단순한 경제적 이유보다도 가치관의 재정립 차원에서도 반드시 정착돼야 한다. 우리 사회는 급격한 경제발전과 이에 따른 기회로 벼락부자가 양산되고 천민자본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선진국형의 건전한 자본주의로 성장하기 위해서도 소비절약 운동은 지속돼야 한다. 정부도 이것을 유의해야겠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