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입장표명도 일단 유보키로/“본질호도” 비난우려 행동엔 신중김영삼 대통령이 10일 모처럼만에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을 방문했다. 동아시아경기대회 개회식에 참석한 김대통령은 3만여 부산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만감이 교차했을 듯 싶다. 그동안 현 정권에 대해 섭섭함을 분출하던 부산시민들이 깊은 정치적 상처를 입고 곤경에 빠진 김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한보로부터 거액의 대선자금을 받았다는 야당의 공세와 언론보도를 접하고 격노한 것으로 알려진 김대통령에게 이날 부산 방문은 심기일전의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한 관계자가 전했다. 김대통령을 수행했던 한 측근은 『김대통령은 한보사태 이후에도 국정수행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며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나 청와대는 단호한 태도로 사태 해결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청와대는 당분간 강성 기류가 흐를 것으로 보인다. 한 관계자는 『김대통령이 아들의 구속까지 결심한 배경과 심경을 여러모로 짚어 볼 필요가 있다』며 『김대통령은 자신에게도 화살이 돌아올 경우 모종의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이날 「대선자금 의혹설」을 음모세력의 공작으로 규정하고 김대통령의 입장표명 등을 일단 유보키로 한 것도 정국수습에 임하는 결연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청와대 내부에는 만약 이번에도 무반응 무대책으로 밀린다면 정권존립의 기반이 와해될 것이란 위기감이 짙게 깔려있다. 권력의 중심인 청와대가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은 매우 특이한 일로, 현재의 정국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청와대는 당초 이번 주내로 김현철씨에 대한 사법처리가 마무리될 경우 김대통령이 국무회의 등 공식회의를 통해 현철씨 문제와 대선자금등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뒤 경선정국으로 국면을 전환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대선자금 의혹설로 원점에서 다시 출발한다는 분위기이다.
청와대 한 고위관계자는 『국가와 정부를 파국으로 몰고 가려는 음모세력이 여러 분야에 있는 것으로 본다』며 『이런 상황에서 김대통령이 무슨 말을 해도 국민이 납득하고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음모세력이 어떤 집단인지를 구체적으로 가리키지는 않았지만 국정혼란을 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고위관계자는 『김대통령도 인간인데 오죽하면 화를 내겠느냐』며 『국가원수를 음해하는 풍토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청와대는 검찰에 대해서도 상당한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한 관계자는 『김대통령은 앞으로도 결코 검찰의 수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다는 원칙을 그대로 지켜갈 것이나 검찰의 태도에는 문제가 많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은 내란·외환의 죄를 제외하고는 임기중에 소추되지 아니한다」고 헌법에 명시돼 있는데도 대선자금과 관련한 수사설 등이 흘러나오는 것은 국가기강 차원의 심각한 문제라는 주장이다.
그렇다고 청와대가 「음모세력」을 비판하는데 주력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야당의 주장 등이 과장되고 의도적이라 할 지라도, 청와대가 대선자금의 멍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신한국당도 야당과 정보제공세력을 싸잡아 비판하면서도 대선자금의 「원죄」를 의식한듯 수위조절을 하는 모습이다. 지나치게 대선자금의 음해설만을 주장할 경우 『본질을 호도하려는 전략』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청와대도 자신들이 직접 나서 음모세력을 조사하고 단죄하는 식의 대응에는 상당히 신중하다. 일단 한보 대선자금 수수의 연루자로 지목된 서석재 의원의 대응, 당 차원의 조치를 지켜보겠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말로는 음모세력을 강하게 질타하면서도 실제 움직이는데 신중한데에는 실효성 있는 수단이 별로 없다는 고민도 적지않게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선자금의 위기국면을 탈출하기 위한 또다른 음모라는 비난을 자초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손태규·이영성 기자>손태규·이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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