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크기 “대규모 노동력 동원 필요”/일보다 700년 앞서… 고고학계 논쟁 종지부경남 창원시 남산유적에서 발굴된 환호는 60년대부터 고고학계에서 줄기차게 진행돼온 청동기시대의 계급사회 존재를 둘러싼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만한 중요한 유구로 평가된다. 또 이 발굴은 환호라는 방어시설이 일본보다 700여년 앞서 개발돼 일본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다.
인간사회의 발전은 군집사회(BAND)―부족사회(TRIBE)―군장사회(초기국가·CHIEFDOM)―국가(STATE)의 단계를 밟는다. 군장사회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계층적 분화에 이어 경제적으로는 피지배계층에 대한 노동력 통제가 이루어지는 사회를 말한다. 고고학계는 그동안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에 군장사회, 곧 계급사회가 존재했느냐를 놓고 논쟁을 벌여왔다.
계급사회 존재를 주장하는 학파는 그 근거로 지석묘와 환호시설 등을 들었는데 지석묘와 환호시설 축조를 위해서는 지배계층의 피지배계층에 대한 일방적인 노동력통제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대하는 학파는 지석묘의 축조는 규모가 크더라도 두레형식의 협동체제에 의해 가능하며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계층차이를 보여주는 적극적 증거가 없다는 점을 주장했다.
특히 청동기 군장사회를 주장하는 학자들이 근거로 내세운 부여 송국리·울주 검단리 등의 환호규모(폭과 깊이)가 이번에 발굴된 환호의 절반 크기에도 못미쳐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남산환호는 규모로 미뤄 엄청난 노동력의 동원이 필요했다는 점에서 청동기시대 부장사회의 존재를 입증해준다. 또 이 환호는 단면이 V자형, 평면이 타원형이며 망루와 목책이 설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본 야요이(미생·기원전 3∼기원후 3세기)시대 환호와 규모와 형태면에서 거의 비슷하지만 축조시기는 700년이나 앞선다.<서사봉 기자>서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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